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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Nov 27. 2019

엄마, 나 고백했어

아홉살 아이의 순정

여니가 학교끝났다며 전화를 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편지 쓰고 받기를 했는데 나 한개 받았어~~."

아이 목소리에 경쾌함이 있다.

각자 말을 전하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거였나본데 한 통은 받았으니 되었다 싶었다.


집에 온 여니가 오자마자 옷도 안벗고 가방에서 편지를 꺼낸다.

붕어가 그려진 종이 두 장을 맞붙여 봉투처럼 볼록하게 만들고 그 안에 편지를 넣어 전달하는 것이었다.

붕어빵에는 팥이나 슈크림이 있지만 붕어빵봉투에는 아홉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아있다.

아이는 꺼내서 내게 보여준다.




편지에는

'여니님! 너무 착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해용

여니님 부끄럽지 않아요. 목소리 크고 멋진 부회장님이 돼주세요.너무 착하게하지말고 솔직하게 화도낼수있어요. 그럼 사랑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부끄러움이 많은 여니는 2학기에 부회장이 하고싶다 했다. 여니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맡은 친구에게 말을 했고 반친구 3명의 동의를 거쳐 후보등록을 했다고 하며  일요일 저녁에 선거 포스터를 가져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랑 남편은 급하게 문구점에서 색지를 사오고 아이의 사진도 뽑아 붙여주었다. 아이는 미리 생각한 공약 3가지를 손수 적고 색종이와 색연필로 꾸며서 가져갔었다.

 


  편지를 보니 회장친구가 보낸것이었다. 아홉살 아이의 통찰력이 이리 놀라울수가. 늬집 자식인지 참으로 야무지고 똘똘하다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여니의 모습을 회장친구도 보았던 것이다. 여니가 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집에 올 때가 많다. 어쩔때는 엄마로서  답답한 나머지 '싫다고,하지말라고 말을해' 라고 간단히 일러줘도 아이는 못하겠다며 울기도 한다. 끝났다는 전화를 할때  말의 기운으로 기분을 알리기도 하고  '엄마 나 오늘 친구때문에 속상해' 라고 문자를 보내오기도 한다. 소심한 모습에 엄마를 닮아 그런걸 어쩌겠어 싶기도 하다. 때때로 유니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상대에 대한 헤아림이 큰 모습을 볼때는 기특하기도 하다.그래서 화도 못내고 싫은 소리를 못하는거겠지만 말이다.



회장친구의 편지를 읽고나서 나는

" 여니는 누구한테 보냈어?"

아이는 뜸을 들이며 부끄러운듯 희미하게 웃으며

"엄마, 나 고백했어."

"뭐!!! 뭐라고???"

같은 반 마음에 드는 남자친구가 있다했다. 수업시간에 공공연하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니. 몰래 보내는것도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어쨌든 구식의 엄마는 좋아하는 감정은 우선 숨기고 상대가 호감의 시그널을 보냈을때 고백을 해야하는거지란 생각이 앞섰다. 내일 학교가서 놀림이나 받는거 아닌지 걱정되었다.  아이는 내 표정을 보고 궁금하다는듯이 왜그러냐고 묻는다. 여린 마음의 아이에게 근심거리를 미리 안겨주는것은 아니다 싶어 말을 돌렸다.


여니가 고백했던 그친구는 1학년때부터 같은 학원에 다녀 아는사이였고 2학년때 같은 반이 되었다. 운동잘하고 똑똑하고 그러면서도 여자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장난을 치는 모습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그친구가 좋다는 걸 처음에는 친언니유니에게 이야기를 했고 유니는 그것을 갖고 자꾸 여니를 놀렸다. 놀림이 싫어 여니는 이제는 안좋아한다고 언니에게 말을 하고 아닌척 했다.


  

다음 날 학교를 다녀온 여니가 집에오자마자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나 오늘 교실 들어가자마자 남자친구들이 나를 놀렸어.ㅜㅜ

나 내일 학교 어떻게 가. 내일 나 학교 안가면 안되?"  이런다.  

아이를 달래며 남자아이들이 진심을 받아줄 만한 마음 주머니가 크지 않아 그리 놀리는거라고 속상했겠다며 토닥였다.



다음 날 아이는 아침에 늑장을 부리며 나를 애태우고 학교를 갔다.

학교 끝나고 전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밝다.

"엄마. 오늘 아이들이 안 놀렸어. 하루짜리였어~!"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후 물었다.

"여니, 다음에도 좋아하는 아이 있으며 고백할 거야?"

여니는 뜸을 잠깐 들이더니

"2학년때는 안할거야."  

이게 무슨소리지? 싶었다.

"3학년 때 있으면 할게. 3학년때는 남자아이들이 진심을 받을수 있는 마음이 커졌을수도 있잖아."

그리 말하고 쇼파에 앉아 만화 스펀지밥을 보며 낄낄거린다.



걱정 사서하는  물렁한 엄마는 또 고백을 하겠다고? 라며 아이말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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