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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Apr 20. 2024

 어디로 가야 하나

  요양원이라는 곳은 죽음에 다가가기 위해 죽음이전에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중간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늙어버린 육신으로 혼자서는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혼돈의 삶을 노인 요양보험제도라는 복지혜택이 생기면서 수혜를 받은 노인과 그 가족들에게 주어진 명암도 엇갈린다.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집에서 살림만 하던 주부들도 너나없이 직장을 갖게 되었고, 몸이 불편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노인들은 수발을 받지 못하고 이 자식 저 자식 집으로 떠돌아다니는 일도 있었다. 노인요양보험시작 되기 전에는 집에 노인환자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수발문제로 가족들의 전쟁이 시작되고 형제간 사이에 균열이 가고 상황에 따라서는 부모 형제끼리 철천지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농촌에서 혼자 살던 할머니 한분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하루가 지난 다음에 발견됐다.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목숨은 겨우 건졌는데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장애를 입었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밖에 없었다. 식사는 물론 대소변도 누구의 도움 없이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다. 


  5남매를 뒀지만 어느 누구도 어머니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사막의 땅같이 메마른 자식들의 감성을 기대하는 것은 누워있던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는 상상에 불과했다. 어머니를 책임진다는 것은 저마다 자기 인생을 저당 잡힌 모험이라 섣불리 모시겠다고 나설 수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칫 불화의 화근이 되어 가정이 파탄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자 자식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해도 해결방법이 없자 마지막에는 5남매가 나이 순서대로 한 달씩 돌아가면서 모시기로 했다. 

한 달간 전쟁을 치르고 나면 순번에 따라 다른 자녀 집으로  옮겨지기가 거듭됐다. 자기의 순번이 끝나면 동생집으로 인계하는 폭탄돌리기가 시작 되었다. 집 근처에서 어머니 인계하러 왔다는 형의 전화를 받고 동생가족은 아침밥 먹다가 밥상도 치우지 않고 숨어버리는 바람에 가족들이 나타날 때까지 할머니를 데리고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안갯속 같은 현실 속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배처럼 보호자들의 숨바꼭질이었다. 그 환자가 아무런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질긴 목숨에 짐짝처럼 끌려 다니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5남매를 위해 갖은 비바람을 겪으며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고목이 되어 그렇게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목욕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노인요양 복지 센터에 등록하면 재가 서비스를 일주일에 몇 시간씩 목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제도적 혜택이 없을 때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끌다시피 해서 화장실에서 목욕을 시키면 온몸에 물을 장대비처럼 뒤집어쓰고 목욕제공자나 환자가 몸살을 앓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고 부부싸움으로 치닫는 노인케어문제로 위기에선 자녀들은 한 달이 1년처럼 지루한 세월이었고 긴 터널 속에 갇혀버린 생활 같았으리라.

  그 질긴 운명의 끈을 놓지 못하고 한 달을 겨우 버티고 나면 순번에 따라 다른 자녀 집으로 옮겨 가야 하는 무덤 같은 어두움 속에서 이 땅을 떠나는 날이 육체적 정신적 감옥에서 해방되는 날이라고 죽음만을 바라는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다. 5남매는 일 년에 두 달 정도 고생하지만 할머니는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신산하고 험난한 질곡의 삶을 지옥 속에서 헤매었다. 노인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요양원으로 들어오고 나서 자식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겨우 벗어날 수가 있었다.  


  노인요양보험 제도 생기기 전에는 집에 방치된 노인들이 있었지만 복지정책이 실현되면서부터는 요양원으로 들어오는 노인들이 많다. 입소 첫날에는 밤에 잠을 설치며 하염없이 한숨만 몰아쉬고 뒤척이는 어르신들이 많다. 낯선 곳에 내팽개쳐졌다고 생각하며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하고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을 두고 가버린 가족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달래느라 힘들어한다. 밤마다 눈물을 훔치며 잠 못 이루는 날을 수없이 보낸다. 적응 기간이 지나면 스스로 얽맸던 미움의 사슬을 풀기까지는 대상자인 어르신이나 요양보호사가 정신적 교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각 가정의 경제상황이나 생활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가정과 요양원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노인의 성격과 취향, 사회성, 종교 등을 따져서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노인문제는 어느 곳이나 있을 것이고 단순한 개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집에서 모시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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