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준비하는 시간,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자 아래층 여자가 서 있다. 특유의 느긋한 말씨 속에 난감한 표정이 숨어있다.
“우리 집에 물이 새는데 위층에서 누수가 된 것 같아서 확인하러 왔어요. 작은방 천정에 물방울이 맺혔거든요. 어디 누수된 곳이 있나요?”
“어머! 그래요?”
그날 아침 나는 출근을 하고 남편은 손자들 데리러 간다며 딸 집으로 향했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와보니 거실에 물난리가 나 있었다. 거실 바닥은 온통 물바다로 변해 세숫대야를 띄었더니 배처럼 떠다니는 정도였다. 온수 파이프가 터져서 더운물로 인한 수증기가 서려 거실 유리창이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더운물이 찰랑거리는 거실 풍경에 손녀는 무섭다고 울고, 손자와 남편은 세숫대야를 가져다가 물을 퍼서 베란다에 쏟아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물 퍼내느라 힘들었던 손자는 피곤한지 곤히 자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서 아래층으로 갔다. 천정에는 물방울이 맺혀있고 세간들을 한 곳에 밀쳐놓은 것을 보니 벽 쪽에도 누수된 곳이 있나 확인하려고 했나 보다. 물난리는 낮에 났었는데 천정에 스며든 물이 이슬처럼 한 방울씩 맺혀있다. 피해를 입은 천정은 도배를 해주겠다고 하니 여자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언제 도배를 했는지 노랗게 변색된 벽에 천정만 도배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며 피해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하룻밤 지나면 마르면 되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단다. 특유의 느긋한 성격답게 말한다. 어차피 집수리를 계획하고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말한다. 몇 년 전 우리집 화장실에서 누수되어 아래층 안방쪽에 벽지가 젖어있다했다.우리집 화장실 공사를 빠르게 해서 편의를 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듯싶었다.
아랫집 여자는 몇 년 전에 화장실 누수 때문에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화장실 벽 쪽에 누수가 되는데 우리 집 배관에서 물이 샌 것 같다며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집에 문제가 있다면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수리를 하겠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위층 누수 피해는 고스란히 아래층 몫이 된다. 피해를 주는 위층은 아래층에 피해를 주지만 자기 집은 피해가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불편한쪽이 알아서 고치라는 듯 나 몰라라 하는 몰염치한 사람도 간혹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행여 싸움으로 일이 커지면 관리소에서 나와서 중재에 나서고 일을 마무리하기까지는 서로 감정싸움으로 이웃 간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공동주택에서 자기만의 이기심이 작동하면 이웃의 불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격한 말싸움에 불편하고 복잡하게 일이 꼬이기 마련이다.
그때는 안방 화장실에서 누수가 생겨 아래층 안방에 벽지가 뜰 정도로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끼었다. 처음 누수 피해를 입었을 때 혹시라도 제대로 수리를 안 하면 골치 아플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겸손하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위층에서 누수된 거라 사모님 댁에서 수리를 해야 된데요. 시간이 지체되면 피해가 커질 수가 있으니 되도록 빨리 수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서로 감정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게 순리라서 되도록 빠른 시일에 공사하겠다며 안심시켰었다. 그때 일이 순조롭게 되어선지 그녀는 여유 있게 편안한 얼굴로 대해주었다.
아래층 여자를 본 것은 그렇게 단 두 번이지만 그녀의 느긋한 성격은 진즉 알고 있었다. 손자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퉁퉁거리며 뛰고 놀아도 시끄럽다거나 조용히 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층간소음으로 위아래층 간에 칼부림이 나는 일이 종종 발생할 정도이니 그야말로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말 없는 아래층 주민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가서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조금만 피해를 입으면 바로 싸움이나 소송으로 들어가는 삭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층간소음으로 사고가 일어나는 뉴스를 통해서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공동주택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울고 웃는 사연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배려와 이해만이 편안한 이웃사촌의 관계를 이어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