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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an 30. 2024

내 말, 어디까지 알아들어?

 너, 내 말 어디까지 알아듣니?


 밤에 놀이터 나갔을 때, 네가 오줌만 딱 고 아파트 현관 앞에 끌고 가서 앉았잖아. 피곤하니까 집 들어가자고. 갑자기 현관 키패드가 고장 나서 문이 안 열리더라. 관리사무소 가보겠다고 목줄 끄는 데도 네가 걷기 싫다고 버텼잖아. 키패드는 안 눌려, 너는 안 일어나, 날은 추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딱 생각이 났어.


 '아, 맞다. 너 지하주차장 좋아하지!'


 긴가민가하면서 너를 설득했어.


"지하주차장 가자. 지하주차장. 너 거기 좋아하잖아."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귀를 움직이고 눈을 굴리더니 씩 웃으면서 일어나대? 그러더니 꼬리를 추켜세우고 지하주차장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걷는 거야. 나 그때 소름 돋았잖아. 너한테 지하주차장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는지도 긴가민가한데, 막 신나서 나를 끄는 너를 보면서 '얘가 사람이야, 짐승이야.' 싶었다.


 산에 가서 공 던질 때, 반대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다가 네가 엉뚱하게 뛰었잖아. 그래서 "거기 아니고, 여기잖아." 하니까 네가 씩 웃으면서 알려준 방향으로 뛰대?


 양배추 잘라서 던져줬을 때, 고개를 휙 하면서 안 먹는다길래 "맛있는데, 먹어보지?" 했더니 킁킁 냄새를 맡다가는 먹어보는 거야. 주인 말 한 번 믿어준다는 표정으로.


 그럴 때마다 네가 어디까지 알아듣고 있는지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요새는 너 앞에서 말조심을 해. 옛날에는 산책 같이 하는 견주들이랑 얘기하면서 "큰 개 키우기 진짜 힘들어요." 이런 말도 했었는데 혹시나 네가 알아들을까 봐, 그래서 속상할까 봐 말을 가린다.


 혹시 이런 말도 알아듣니?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큰개."

"내가 너 엄청 좋아하는 거 알지?"

"아프지 말고 건강해. 오래오래 같이 있자."


 너희의 세계에도 애정이나 사랑 같은 게 있겠지? 너에게 그걸 전하고자 하면 전할 수 있는 거겠지?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안정된 모습을 동경했다. 특출 난 거 없어도, 뭘 하지 않아도 그저 너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랑. 그게 얼마나 사람을 온화히 빛나게 하던지. 사랑을 따내기 위해 발발거리던 나는 안정된 사랑의 사람을 보면 너무너무 부럽고, 한편으론 서럽기도 했다.


  사랑을 줄 차례가 된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랑을 전하고 싶다. 너의 존재만으로도 감격히 사랑하는 사랑.


너무 예뻐.
너무 귀여워.
너무 소중해.
사랑해.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야.

 이런 말까지 알아들어 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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