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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Mar 19. 2024

손님에서 가족 되기

 평일엔 사무실에서 사는 큰개를 주말에만 데려왔었다. 주말에만 놀러 오는 큰개, 우리가 어디 놀러 가면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있던 큰개였다.


 큰개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평일엔 부족했을 산책을 마음껏 해주고 싶었다. 원체 발목도 무릎도 약해서 오래 걷는 것은 피했던 내게 큰개의 활동량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난 장독대 같은 것이었다. 팔뚝만 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헤죽 웃는 큰개를 위해 동네와 뒷산과 천변을 열심히 걸었다. 한 시간, 한 시간 반, 두 시간 걷고 나면 저녁엔 꼭 다리가 저렸다.


"자기야, 나 다리가 저려."

"나도."


 우리는 주말 밤마다 다리 저림을 호소했다. 그래도 침대 옆엔 눈을 뒤집고 뻗은 큰개가 있었다. 큰개 자는 걸 내려다보면 성취감 같은 게 있었다. 너의 주말만큼은 즐겁게 해 줬다는 성취감.


 큰개를 보내야 하나, 우리 가족으로 맞이해야 하나 고민할 때 여러 고민거리가 있었다(보낼뻔한 얘기는 '네, 아파트에서 키워요.' 글을 참고해 주세요).

 

 첫 째, 이제 결혼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닐 애들이 무슨 개를 키운다고.

 둘째, 너네 나중에 애 낳으면 어쩌려고.

 셋째, 큰개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니.

 넷째, 둘 다 회사 다니면서 애 산책을 어떻게 시키려고.


 우리는 지지부진 고민하다 결국엔 큰개를 가족으로 맞이하겠노라 선언했고(우리에겐 중대한 일이었기에 '선언'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모든 고민거리를 품은 채 큰개와 매일 걷게 되었다. 큰개와 가족이 된 우리의 일상은 이러하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큰개와 뒷산에 간다. 큰개는 밤새 참았던 배변욕을 시원히 해결하며 씨익 웃는다. 가벼워진 몸으로 폴짝폴짝 뛰며 공을 삑삑 물어 소리를 낸다. 하늘색이 가벼워지면, 새소리가 들려온다. 큰개 기분이 더 좋아지면 바닥에 구르며 온몸에 바깥 냄새를 묻힌다. 나는 "으, 드러워라." 싫은 표정을 지으며 핀잔을 주지만 사실은 큰개가 귀여워서 속으로 웃는다. 큰개가 행복해질수록,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1시간 열심히 걷고 집으로 돌아와 큰개에게 시원한 물을 떠주고, 삶은 계란과 다진 당근을 섞어 '당근 계란밥'을 만들어준다. 흰 털이 잔뜩 흩뿌려진 바닥을 닦고 나면, 그제야 출근 준비를 한다. 큰개는 현관에 엎드려 주인이 원시인에서 사회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한다. 혼자 있어야 함을 직감하며 큰 한숨도 내쉰다. 한편에 큰개의 시선을 신경 쓰며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한다. 큰개가 먹을만한 간식을 흩뿌려 주고 돈을 벌러 나선다.


 출근하는 길, 이미 피곤하다. 지금 자라고 하면 다시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회사 일은 회사 일대로 돌아가고, 하루종일 열심히 움직인다. 저녁 5시, 해야 할 일을 잔뜩 싸들고 바삐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을 열면 큰개가 온 힘을 다해 큰 엉덩이를 흔들며 끙끙 앓는다. 배를 탁 까고 누워 만져달라고 쳐다도 본다. 온종일 나만 기다린 큰개를 만지다가 털썩 드러누워 껴안는다. 그럴 때는 꼭 세상에 큰개랑 나, 둘만 있는 것 같다. 큰개의 배를 쓰다듬으며 얼마간 더 누워 있는다. 행복 같은 걸 느낀다.


 큰개가 버둥거리면 공던지개와 삑삑이 고무공 몇 개를 챙겨서 힘차게 길을 나선다. 큰개는 주인이 돌아온 게 너무 좋은지 걷다가도 주인 얼굴을 쳐다보며 씩 웃는다. "그렇게 좋아?" 묻는다. 우리가 씩씩하게 걷는 동안, 하늘에 분홍빛이 감돈다. 또 하루가 저물려고 한다. 하늘색이 노랗다가, 빨갛다가, 남빛이다가 검어질 때까지 걷는다.


 집에 돌아오면 큰개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사료를 아작아작 씹어먹고, 누워서 꾸벅꾸벅 존다. 나는 큰개 옆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따끈한 도라지 차를 후후 불어 마시며 낮에 다 하지 못한 밥벌이를 수행한다. 주인은 일하는 데, 큰개는 옆에서 꿈을 꾼다. 산책을 하는 꿈인지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푸푸 거린다. 이 시간쯤엔 항상 혼자였을텐데, 혼자인 걸 그렇게 무서워하는 너를 내 옆에서 재우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든다.


 나는 폼롤러를 꺼내 저린 다리를 문지른다. '오늘도 만 보쯤은 걸었겠지.' 생각한다. 큰개는 실눈으로 한 번 쳐다보곤 여전히 푸푸 숨을 뱉으며 깊은 잠을 잔다.


 큰개와 가족이 된다는 건, 매일의 시작과 저묾을 꼭 밖에서 마주하는 일이었고 자주 다리가 저린 일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들고, 가끔은 버겁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너랑 가족이 된 이상 해내야지. 너의 짧은 생을 행복으로 채워줘야지. 꿈도 행복한 꿈만 꾸게 행복한 개로 만들어줘야지. 네가 나에게 주는 행복을 나도 너에게 줄 수 있도록 해내야지. 결심하며 폼롤러로 허벅지도 문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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