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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Sep 28. 2024

나는 그날,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한 존경-이슬아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아침이었다. 8살의 꼬마들은 노란색이나 빨간색 우산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양 쪽 어깨가 흠뻑 젖은 채로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고도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하나 둘 교실을 메웠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이 뚫린 것처럼, 수도꼭지를 제일 세게 튼 것처럼 비가 내렸다.

  

 9시가 넘었는데도, 1교시를 시작해야 하는데도 한 아이가 도착하질 않았다. 비에 떠내려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체구가 작은 수훈이었다. 수훈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은 울렸으나 응답이 없었다. 오른손으로 수학책을 들어 보이며 아이들에게 수학책을 꺼내라고 하면서 왼 손으로는 통화음이 울리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톡톡 배움터지킴이 선생님께서 뒷 문을 두드렸다. 흠뻑 젖은 수훈이가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울고 있었다.

 

"애기가 우산도 없이 문방구 앞에서 울고 있더라고요. 엄마한테 혼나고 학교 가라고 쫓겨난 모양이야. 급한 대로 물기는 닦아줬는데, 옷이 다 젖어서 어쩌지요."

"아이들 배변실수하면 갈아입히려고 여분의 옷을 챙겨놓은 게 있어요. 갈아입힐게요. 옷 빌려줄 사람?"

"저요!"


 8살 아이들은 사물함에 하나씩 여분옷을 챙겨놓는다. 오줌을 한 번도 안 싼 친구가 수훈이에게 옷을 빌려줬다. 수훈이는 옷을 다 갈아입고도 여전히 끅끅 울며 콧물방울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나는 수훈이를 바라보다가 수훈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왼 손으로 수훈이 엉덩이를 받쳐도 무겁지가 않았다.

  

"우와, 선생님이 수훈이를 안았다!!!!"

"너네도 눈물이 계속 나는 일 있으면 안아줄게! 수학 공부 하자! 이제 공부에 집중!"


 수훈이는 내 품에서 흥흥 울었다. 왼쪽 어깨가 수훈이 콧물과 눈물로 흠뻑 젖었다. 소개팅이 없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수훈이가 울다가 꾸벅꾸벅 졸게 될 동안 우리는 사와 오를 더하고 삼과 칠을 더했다.


 나는 젊고 서툰 수훈이 엄마와 작고 어린 수훈이의 아침을 상상했다. 급해죽겠는데 엄마 말은 더럽게 안 듣는 수훈이와, 엄마가 너무 좋아서 엄마랑 더 있고 싶은데 회사에 가야 한다며 소리 지르는 야속한 엄마. 엄마는 인내심이 바닥났고,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나가!"


 수훈이는 쫓겨났고 비가 내렸다. 수훈이는 생쥐처럼 비를 쫄딱 맞다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등교하는지 정문 너머까지 살뜰히 살피던 백발의 배움터 지킴이 할아버지에게 발견되었다. 지킴이 할아버지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수훈이를 달랬다. 수훈이는 "엄마가요, 엄마가." 하다 으앙 울었다. 지킴이 할아버지 손을 잡고 교실 앞까지 온 수훈이는 또 겁이 났다. "학교에 늦게 오면 안 돼요!" 도끼눈을 뜨던 마녀 선생님 얼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수훈이는 한 걸음 뒤로 갔지만, 야속한 지킴이 할아버지가 교실 문을 두드려 기어코 선생님을 불렀다.

 

 수훈이는 품에서 새근새근 졸았고, 나는 쉬는 시간까지 수훈이를 안고 살금살금 교실을 걸었다. 아이들도 잠든 수훈이를 위해 소근소근 목소리를 낮췄다.

"어머님, 수훈이는 학교에 잘 도착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비를 맞아서 옷은 친구 옷으로 갈아입혔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문자를 보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답장이 왔다.


 나는 그날,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하러 선생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고 해서 된 거긴 한데. 188만 원을 첫 월급으로 받고, 188만 원 세대가 되었구나 생각하며 썩은 미소를 지었는데. 수훈이를 왼손으로 안고 오른손으로 분필을 잡던 그날은,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 잘 못 하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확연했다. 이건 내가 꼭 잘해야 하는 일이구나. 그런 순간이 정말 있구나를 알게 됐다.

 

어떤 아이를 만나면, 마음으로 첫인사를 건넨다.

'내가 너 만나려고 이 교실에 왔구나. 내가 잘해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너, 반갑다.'




"저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잘 못 하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확연했어요. 이건 내가 꼭 잘해야 하는 일이구나. 그런 순간이 정말 있구나를 알게 됐어요. 또 그 순간이 제게 온다면 알아볼 것 같아요. 그렇게 중요한 순간은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중 정혜윤 pd님 인터뷰 중 일부 문장을 활용하여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은 제가 깨끗이 존경하는 분들께 선물하곤 하는 책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당장 읽으세요... 인생책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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