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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Nov 28. 2023

우리 집 큰아들

남편은 장남이다. 남동생이 하나 있지만 부모님은 장남에게 많이 의지하고 상의하셨다. 그에 보답하듯 남편도 부모님을 살뜰하게 잘 챙기는 착한 아들이다.


특히 소비에 있어서는 철이 빨리 들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아끼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본인을 위해 물건을 구매하는 데는 굉장히 인색하다. 


특히나 옷을 잘 못 산다. 동생이 입다 버린 옷이나 신발을 흔쾌히 받아서 입는다. 새 옷은 살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사는 데까지 한 달은 족히 걸린다.


5년 전쯤 일이다. 회사에 자주 입고 다니는 바지가 있었다. 엉덩이 쪽 부분이 터졌다. 어떻게 하느냐의 기로에서 수선을 맡겨보기로 했다. 수선을 맡긴다 해도 예쁘게 나오기 힘든 부분이었다. 새로 사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에 그는 거절했고, 결국은 수선을 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계단을 오르는데 뒤에 따라오던 차장님이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집에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말을 이해하기 쉽게 바꿔 보자면, '집에 파산이 난 건 아니지?', '그 정도로 힘든 상황인 거야?'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어찌하랴.




남편은 회사 다니면서 자기 일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가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잘해나가고 있다. 잘 해내는 만큼 난 또 기대를 높였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남편이 아니라 큰 아들이다.' 별로 공감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집에도 그 큰 아들이 산다.


큰 아들은 게임을 좋아한다. 예전에 사 둔 플레이스테이션을 지금도 잘 사용한다. 축구 게임이 질리지도 않은지 틈만 나면 게임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게 되면, 그와 동시에 내게 묻는다. "나도 놀아도 돼?" 이 말은, 나도 게임해도 되냐는 질문이다. 삶에 낙이 없다나?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내게 이렇게 얘기한다. "나 조금만 놀다가 잘게." 여기서 '조금'이란 시간 단위는 고무줄이다. 다음 날 회사에 가야 해서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 한두 시에 자러 들어온다. 다음 날 아침엔 어김없이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큰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이다. 평일에는 주로 회사 근처에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정시에 들어오는 날에는 묻는다.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저녁 메뉴에 따라 밖에서 먹을지 집에서 먹을지 결정한다. 대부분은 밖에서 먹고 들어온다. 


내 요리 실력이 형편없는 사유도 있지만, 보통은 아이들에게 맞춰서 간을 하다 보니 어른 입맛에는 덜 자극적이다. 아들이라 그런지 어린이 입맛이다.


큰 아들은 잔소리를 하게 만든다. 집에 오자마자 바로 옷을 안 갈아입는다. 집안일도 할 게 많은 게 분명 보일 텐데 엉덩이가 무겁다. 


아이가 스스로 방 정리를 하게 하는 방법은 잔소리가 아니라 '칭찬'이라고 배웠다. 아이 방에 들어가서 한 가지라도 잘한 점을 찾아내서 칭찬하라는 것이다. 큰 아들에게도 시도해 본다. 잔소리보다는 칭찬을 해주는 게 훨씬 효과가 좋다.


큰 아들은 잘 토라진다. 두 딸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다녀왔는데 본인 아이스크림을 안 사 왔으면 서운해한다. "아이고~ 서운했어요~ 우리 큰 아들?"하고 장난치면 받아들이지 못한다.


집에 아들은 없는데 큰아들은 있다.




내가 남편을 '큰아들'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으면 대응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남편이라면 어른이 된 지금도 게임이 그렇게 좋은지 이해가 안 됐을 텐데, 큰아들이라면 '또래 친구들이 워낙 좋아하고 즐길 테니까'하며 인정할 수 있다.


남편이라면 떡볶이처럼 맛이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만 찾을 때는 건강 관리에 신경 좀 써야 한다고 잔소리할 텐데, 큰아들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남편이라면 정리를 잘 못하고 게으름 피우는 것 같을 때 답답했는데, 큰아들이라면 아직 미숙해서 좀 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 몰래 '큰아들'로 생각해 보면 심리적인 안정을 빨리 되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아들보다는 남편이 되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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