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굴러라 호박 Dec 02. 2019

9.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에 오르다.

허버허버 5박 7일 이탈리아 여행기



커다란 창과 고풍스러운 장식이 있는 호텔 라운지에서 

아침식사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피렌체 탐방에 나설 준비를 했다. 

이날의 목표는 두오모와 두오모 지붕인 쿠폴라. 

운동화를 단디 신고 밀라노 두오모에서 나시와 반바지로 입장을 못 했던 것을 되새기며 

복장도 충분히 갖추어 입었다. 


자, 우리는 피렌체 두오모로 진격할 준비가 되었다. 


흰색과 에메날드, 청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피렌체의 두오모.


두오모 오픈 시간 전에 도착을 하니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성당을 먼저 들어갈까 두오모를 올라갈까 잠시 갈등했지만 

다리와 무릎이 아직 멀쩡한 오전에 두오모를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두오모를 올라가는 계단 쪽에 줄을 섰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물 한 병, DSLR 카메라.

이 순간만큼 한국에 두고 온 신랑이 간절하게 생각 난 적이 없었다. 

이런 때 신랑이 있었으면 카메라도 들어주고 물도 들어주고 뒤에서 끌어주고 앞에서 잡아 줄 텐데... 

좁고 좁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삼백 여개의 계단을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일은 도대체 왜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하는 길이었고 짊어진 카메라는 고통의 무게였다.


도대체 냉정과 열정사이의 아오이와 준세이가 뭐라고, 그 둘은 이 길을 안 올랐을 것 아닌가. 

땀을 뻘뻘 흘리며 두오모 지붕 위에서 만났었던가?! 기억도 희미해지는데 나는 오르고 있다.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다란 계단은 상행과 하행이 만나는 구간마다 정체기를 이루고 작게 난 창으로 불어오는 실바람으로 땀을 날리며 그렇게 올라간 쿠폴라.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마지막 계단을 딛고 지붕 올라서는 순간, 

탁 트인 피렌체의 전경과 시원한 바람은 잊을 수가 없다.

올라오는 길에는 냉정과 열정 사이가 뭐라고를 그렇게 구시렁거렸지만 주황빛 지붕과 대조되는 푸른 하늘을 보는 순간 그 영화는 나를 여기로 이끌어 준 고마운 계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언제 내가 또 여기를 올라 피렌체의 지붕을 바라보게 될까.

원 없이 마음껏, 최선을 다해 올라와 두 눈에 담고 돌아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8. 피렌체, 새벽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