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허버 5박 7일 이탈리아여행기
우리가 가고자 하는 식당은 성모승천 대축일로 문을 닫았지만, 바로 옆에 비슷한 분위기의 밀라노 가정식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던 시기인지라 맛없어도 고! 무조건 문만 열어다오! 를 외치며 들어갔고 다행히 맛도 있고 구글 평점도 좋았던 곳이다.
적당히 흐르는 음악과 도란도란하고 즐겁게 오고 가는 이탈리어를 BGM으로 꼬부랑 글자의 이탈리아어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고 또 보았다.
출발 이틀 전까지 스케줄이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어도 먹는 것 하나만큼은 걱정하지 않았는데 실제 메뉴판을 받아 드니 꼬부랑 글자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 아니 그림이더라! 우리에겐 파파고가 있고, 지난 2년 동안 이탈리안 요리를 배우는 쿠킹클래스를 꾸준히 다니고 있어 익숙해졌다고 착각한 이탈리아 요리도, 메뉴명도,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메뉴판을 그리고 필기체를 접하는 것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다가왔다.
암호를 해독하듯 몇 가지 아는 단어들의 조합(현실은 때려 맞추기)을 실시해서 겨우 밀라노 대표 음식과 버섯 리소토를 주문할 수 있었다.
출발 직전에 그동안 요리를 배웠던 이탈리아 요리 선생님께 자문을 구해서 우리가 가는 세 도시 - 밀라노, 피렌체, 로마의 추천 레스토랑과 꼭 먹어야 하는 지역 음식 몇 가지를 꼭꼭 집어 과외까지 받았건만 이럴 수 있는가. 아는 단어라고는 풍기 - 버섯, risotto - 이게 리소토, 그리고 파스타 면 몇 가지뿐이라니!!
추천받은 음식을 찾아 메뉴판을 헤매고 윌리를 찾는 식으로 단어들을 조합해서 겨우 요리와 글라스 와인까지 주문을 끝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머리를 풀가동시켰으니 음식이 특별히 더 맛있어지겠다.
밀라노에 오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수많은 요리들이 있겠지만 대표주자 세 가지만 골라보면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cotoletta alla milanese),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risotto alla milanese), 오소부코(Ossobuco Milanese)가 있다.
뒤에 알라 밀라네제는 ~밀라노의 XX정도로 해석하면 되는 음식들.
얼마나 이 음식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면 밀라노의 라는 말을 붙여서 음식명을 정했을까.
우리나라 전주비빔밥과 안동찜닭이겠지.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cotoletta alla milanese)는 송아지 갈비 부위를 달걀물 입히고 밀가루 입혀서 버터에 튀겨낸 요리로 비주얼도 그렇고 만드는 방법도 딱 한 가지가 생각난다. 밀라노 사람들은 기절할지도 모르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이것은 돈가스다. 돼지가 아닐 뿐... 실제로는 돼지로도 만든다고 하고 더 북쪽 지역은 닭을 조리한다고 한다. 얇고 바삭바삭하게 튀겨져 나온 고기를 레몬즙을 뿌려서 먹으면 소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소하면서 깔끔하게 맛있다. 소고기 단백질을 달걀물 단백질 입혀서 빵가루 탄수화물을 묻혀 버터라는 기름에 튀겼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risotto alla milanese)는 샤프란이 들어간 노란빛 리소토로 송아지 정강이 뼈 부위를 조리한 오소부코와 한 접시에 같이 나왔다.
리소토는 은은한 샤프란 향이 돌고 촉촉하지만 쌀알이 알알이 씹혀 이것이 진정한 이탈리아의 맛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한 맛의 오소부코는 건드리기만 해도 뼈에서 살이 스르르 떨어져 나와 혀 위에서 그 살들이 녹아 사라지는데 한우 갈비도 이렇게 부드럽진 않을 것이다. 오소부코는 굵은 뼈라 그런지 뼈의 골수까지 먹으라고 작은 전용 포크가 꼽혀 나왔는데 처음에는 뼈를 어떻게!라고 했지만 어디 가서 이렇게 먹으랴 하며 골수까지 쪽쪽 빼먹었다.
이 식당을 방문하기 전에는 휴일에 여는 음식점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거나 휴일에 일해야 할 만큼 맛이 떨어지는 (혹은 매출이 떨어지는) 가게라고 삐딱한 시각으로 바라보던 내가 있었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동네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와인을 한 잔 하고 맛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속에서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밀라노의 맛을 마음껏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