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메이커를 샀다네.
중독이 왜 일어나느냐 하면, 의학적인 이유까지는 모르겠고, 내 생각으론 결핍 때문이다. 뭐, 내 얘기다.
나는 늘 가슴에 뻥 뚫린 구간이 있는데 아마도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공허이다. 어떤 석박이 분석을 해줘야지만 확실해지겠지만, 뭐 어떤 게 원인이래도 이상하지는 않다. 불우한 가정 환경, 불안정한 성장 배경, 지난한 실패한 사랑의 역사, 박살난 꿈. 프로이트가 구강기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이 성장하여 흡연을 하게 되는 게 충족되지 못한 젖꼭지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했던 것처럼, 안정적인 애정을 공급받지 못한 빈 자리가 계속해서 비어서 그 공간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것이 잘 채워져 있을 때에는 나는 놀랍도록 아무 것에도 중독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술이고 담배고 섹스고. 끊으려면 끊고 즐기려면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적어도 술이니 담배니 섹스가 모자라 시뻘건 눈을 하고 새벽녘 길가를 헤메는 일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잘 채워지기는 날이 갈수록 어렵다. 어디부터 꼬였다고 해야 할까. 나는 반드시 안 좋은 과거나 배경을 가진 사람이 안 좋은 현재와 미래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딱히 내 어린 시절에 대해 분노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다만 타인에게 내 정서적 안정의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것은 도무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미친 결핍을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누가 채워주겠나.
그러니까 이 인간관계에 대한 결핍이 내게는 중독으로 다가온 것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공허함이 잊혀지니까. 그래서 내 몸의 혈관에는 적혈구와 비슷한 비율의 알콜과, 니코틴과, 카페인이 흐른다.
그런데 최근 어떤 계기로 인해 술과 담배를 동시에 끊게 되었는데,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반평생을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았는데 이걸 뚝 끊고 나니까 머릿속이 미친듯이 들끓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다가 지나치게 차분해져서 내 삶의 모든 잘못된 구간을 돌아보는 절망적 상태가 반복된다. 그리고 우스운 것은, 술과 담배를 끊어서 확실하게 건강에 도움이 되긴 했는데, 이 중독이 다른 것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커피야 원래 많이 마셨다고 치고, 어마어마한 양의 쇼핑을 하고 있다. 월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틀에 다 쓸 정도로 적은 편은 아닌데, 25일에 받은 월급 27일에 달랑 30만원 남기고 다 써버렸다. 평생 먹은 와플이 스무 개가 안 넘는데 집에 와플메이커를 들였으니 이 정신나간 구매욕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와플메이커는 샀는데 와플 반죽 살 돈은 안 남았으니 다음 월급때까지 나무껍질이나 벗겨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