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로맨틱하게 앓는 그것을 나는 정말로 앓았다.
"나 스쿼시 치려고."
라고, 내가 몰래 좋아하는 여자가 말을 했을 때 나는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당연히 그 자리에서 줄줄 읊었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의 옆에 스쿼시 코트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스쿼시를 쳐 보고 싶었다. 마침 내가 퇴사를 한 참이라 시간도 에너지도 남는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스쿼시를 치자. 체육관 앞에서 만나지 말고, 내가 아침마다 너를 데리러 가겠다. 그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최적의 동선을 고려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자 내가 몰래 좋아하는 여자는 전화기 너머에서 아마 웃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스쿼시를 치게 되었다. 일 주일에 세 번, 이른 아침 출근시간 전. 당시에 내가 몰래 좋아하는 여자는 굉장히 바빴고, 그렇게 짬을 내지 않으면 도무지 만나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스쿼시라는 운동이 문제였다. 사무직으로 몇 년을 보내며 책상 앞에서 썩어버린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라켓을 쓰는 운동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라 금방금방 실력이 느는 것은 재밌고 좋았는데, 운동을 시작하고 30분 정도가 지나가면 자꾸 검은 갓과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코트 뒤쪽에서 내게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숨이 턱밑까지 차다가 눈 앞이 캄캄해지고,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의지로 몸을 움직이는 건지 무슨 악령에라도 들려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내가 몰래 좋아하는 여자를 그냥 보통 좋아한 게 아니었다. 그 감정은 한없이 사랑에 근접한 것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나 자신에게 그렇게 가혹한 일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해냈을 리가 없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현관 앞에 누워 잠깐 누워 있다가 일어나곤 했다. 유달리 피곤한 날이면 씻지도 못하고 현관에서 한시간 쯤 잠들어 있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 집은 2층인데, 1층으로 계단을 내려갈때면 다리가 후들대다 못해 하나의 풍선인형처럼 나풀거리곤 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온 몸이 비명을 지르면서 제발 그만두라고 말했다. 이러지 말고, 서서히 체력을 다시 기르자고. 가벼운 조깅부터 시작하자고. 나는 아랑곳 없이 무자비한 결단으로 내 몸을 일으켜 라켓을 손에 쥐고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내 결단은 그렇게나 멋진 것이었지만, 내 몰골은 아마 갈수록 우스워졌을 것이다.
사랑을 앓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통 어떤가. 사랑을 앓는다고 하면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클리셰가 있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던가, 골목길 같은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다던가, 뭐 그런 뮤직비디오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들. 대개 사랑을 앓는 방법은 그렇게도 로맨틱한 법인데, 나는 정말로 종종 바닥에 드러누워서, 땀범벅이 되어 끙끙 앓았다. 내가 앓은 것은 분명 근육통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얼마 전에야 알았지만 내가 몰래 좋아했던 그 여자는, 내가 정말로 스쿼시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렇게 몇 달을 보낸 줄 알고 있더라. 스쿼시를 안 좋아했던 건 아닌데, 그 사람이 내 애정을 몰랐던 건 조금 웃겼다. 회사를 다니며 다시 스쿼시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지만 만약 또 "나 스쿼시 다시 치려고." 같은 말을 듣는다면 나는 한번 더 주워섬길 것이다. 저번에 그만두게 된 게 너무 아쉬웠으며, 시간은 어떻게든 맞출테니 나랑 같이 치자고. 내가 스쿼시도 정말 좋아하고, 너도 정말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