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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 Aug 22. 2022

남편이 준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남자의 출산기 8주 차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아직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침마다 아내를 출근시키고, 출근을 했다가 일을 마치고 아내를 픽업하여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는 저녁을 준비하거나 가끔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곤 하지요. 출근하며 아내는 화장을 하고 나는 운전을 하며 소소한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가 일을 하며 메신저로 자잘한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일에 대한 대소사도 나누지만 대부분은 짬나는 시간에 보았던 뉴스 기삿거리나 주말에 봤던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는 수다스러운 이야기들입니다. 퇴근길에서부터 저녁시간을 보내며 잠들기 전까지 다시 이어지는 대화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들도 생겼습니다. 물론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 차에 맞는 이야기나 병원에 다녀오는 이야기들도 하지만 대부분은 임신과 출산보다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이를테면, 갓난쟁이일 때의 육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린이 이상이 되었을 때의 교육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아마도 6~7년 이후의 이야기겠지요. 당장 8주 차에 대한 건강상태, 12주 차의 태아 검사 이야기는 오히려 불안감을 쌓이게 만들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내도 그렇겠지만 내가 숨겨야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보, 어렸을 때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었어?"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오빠는?"


"나는 그림 그리고 싶었지. 항상 그림만 그렸어. 음악도 좋아했고."


"딸기도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어린날이 조금 지나면 감정적 자유로움을 떠나 갖춰진 형식 내에서 고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게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지요. 피아노는 꼭 배우게 하고 싶고 어쩌면 음악을 업으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꼭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든, 좋아하는 게 하나쯤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무엇에 대해 깊게 얘기하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몇 주 차가 되면 해야 할 일. 꼭 먹어야 할 영양제. 꼭 해야 할 검사. 임산부가 해야 할 몇 가지.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절대로 즐겁게 만들지 않습니다. 


다만 남편으로서 내가 준비해야 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수년 전 친형이 첫 아이를 갖게 되고, 혼자 사는 동생인 내 집에 형수와 같이 셋이 놀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색한 집과 여전히 처음 보는 것 같은 작은 아빠를 보고는 내내 울고 칭얼대곤 했지요. 우리는 간단히 준비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형은 아이가 칭얼대니 한 손에 아이를 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형의 한쪽 팔뚝에 안긴 조카 녀석은 곧 쌔근쌔근 잠들었고, 형은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식사를 했으며, 그렇게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이미지는 내게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충격이었죠. 팔에 달라붙어 있는 조카아이. 아무렇지 않게 밥 먹으며 웃고 즐기던 형의 모습. 편하고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내던 형수님. 


그래, 체력.


요즘은 운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열량 고단백 음식과 파우더를 먹고 있습니다. 내가 당장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것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를 위해, 딸기를 위해, 내 팔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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