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총이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모든 국가가 그런 것도 아니고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유는 사상적 이유와 현실적 이유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현실적으로 총이 있고 없고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현실적으로 보자면 총이 사용되는 실태를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경우 매년 4만 명 정도의 총기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데, 60% 이상이 자살이다. 그 다음으로 35% 정도가 마약 갱 같은 범죄 관련 인명 사고이고, 총기 난사 같은 것이 이슈가 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총기 난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전체 중 1%도 안 되는 비중이다.
드러난 통계를 놓고만 봤을 때, 총기 소유의 확산은 자살의 확산에 가장 크게 기여하며 그 다음이 범죄의 인명 피해 확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동시에 피상적으로 생각해보면 총기 확산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자살 성공률과 범죄 인명 피해율만 늘려주는 게 총기 소유 아닌가?
그러나 미국인들은 똥멍청이가 아니다. 총기 합법화는 일부의 주장처럼 NRA의 로비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지성인들의 현실 아래의 하부구조를 고려한 선택인 것이고 실제로 총기 소유의 장단을 고민하게 만들만한 논거들이 있다.
그 중에서는 요즘의 한국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 수 있는 이유도 있는데, 총기 소유가 범죄자나 외국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국 정부로부터의 자율성과 자기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대 사회, 특히 한국에서는 정부와 싸운다는 개념이 성립될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 국가를 척지고 도망갈 곳이 없다. 삼면이 바다고 위는 북한인데다가 전국에 시시티비가 깔려 있고 카드 거래 내역과 핸드폰 사용 내역도 추적당할 수 있다. 인구 밀도가 높을 뿐더러 국민들에게 '국가의 적은 나의 적'이라는 의식도 팽배하다. 미국이었다면 유병언도 어떻게 도망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선 안 된다.
건전하고 모범적인 정부라면 이러한 구조가 좋다. 그러나 정부가 언제나 건전하고 모범적이진 않다. 스탈린의 비밀 경찰은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새벽에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납치하듯이 재판도 없이 투옥하곤 했다. 친구랑 카톡으로 윤석열을 욕했다고 경찰이 새벽에 문을 부수고 들어와 재판도 없이 감옥에 넣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미국인의 총기 소유가 상징하는 마음가짐은, 비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면 나도 총으로 경찰을 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탈린의 비밀 경찰의 행태가 보여주듯이 때로는 정부가 악이고 내가 선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선악을 쉽게 판별할 수는 없으나, 법치국가에서 헌법은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불과 40년 전까지만해도 정부가 헌법을 어기고 개인을 탄압하는 일이 존재했다.
미국에서도 카우보이 시대면 몰라도 현대국가에서 개인이 총 몇 자루 가지고 있다고 국가를 상대로 대항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국가를 상대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이어야지, 총 몇 자루로 뭘 할 수 있겠나. 미국인이 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실제로 국가에 대응할 수 있는 도구로서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 의지의 표출로서 기능이 더 큰 듯하다.
총기 소유가 신장시키는 두 가지 권리가 있다. 평등권과 자율권이다. 총기가 있다면, 여자나 노인이나 장애인이나 건장한 남자와 평등해진다. 물론 지금도 건달이 아니고서야 건장한 남자가 힘으로 불평등을 조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무튼 더 평등해진다.
한국에서는 자신을 지킬 권리를 공권력에 위탁하고 있다. 왠만큼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이 물리력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선빵을 맞아도 맞서 싸워선 안되고 조용히 자리를 피한 뒤 법적인 처리를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 인간의 정서에 맞지 않는 법률이다. 자유인이라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법률이 결과론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은 개인의 권리와 책임 감각을 상실하게 하고, 자유인으로서의 효능감을 떨어트린다. 그러니 이 부분에선 미국식 정당방위를 지향하는게 맞다고 본다. 어차피 한국에는 총도 없으니까 미국만큼 위험하지도 않다.
내 생각엔 지금의 한국은 법적인 부분을 떠나 그냥 분위기 자체가 개인의 효능감이 작고 국가에 의지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실체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아니다. 박정희면 몰라도 지금 대통령이 국가 아젠다를 주도한다고 누가 생각하겠나. 대통령보다는 여론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의 여론이라는 것은 제대로된 오피니언 리더는 찾기 힘들고 sns와 편향적 유튜브, 커뮤니티 등이 가세해 중구난방이 된 상태처럼 보인다. 그렇게 되면 결국 원칙 없고 무질서한 흐름에 따라 여론이 흘러가고 국가를 형성한다는 것인데, 제대로 실체화되지 않고 견제 받지도 않는 것은 타락하기 십상이다. 발전적이고 날카로운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위축되고 탐욕스러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론과 국가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생각하고 직접 발전적이고 열정적인 방식을 모색하는 자세가 퍼져야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이 타락하고, 국가가 타락하고, 다음 세대에 타락한 사회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