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잉 Sep 05. 2024

요즘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사회자: 도덕이라는 것이 그냥 말 뿐 인 것이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법 비슷한 것이냐. 아니면 양심이란 것은 타고난 본성이고 도덕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냐.


이 주제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한 분이 나와계십니다.


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덕이라고 하면 굉장히 고리타분한 느낌이 들고, 살면서 입 밖에 낼 일이 거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겁니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도덕적인 판단을 끊임없이 합니다. '저 사람은 잘했고, 저 일은 잘못된 일이고...' 계속 판단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도덕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도덕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현대의 도덕이라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면서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생각이 팽배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조선시대 훌륭한 임금이었다는 사람도 너무 잔인하고, 미국에서 사업가가 시장 논리를 들이밀면서 에이즈 치료제 값을 두 배로 올린다고 하고, 어디서는 돼지 고기를 안먹고 여자들은 히잡을 쓰고, 어디서는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결혼을 하고 그러면 잘못된 것 같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역사가들, 철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보니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에요. 지금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잘못됬다고 무작정 비난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거죠. 그 상황의 그 시대 그 사람에게는 지금 우리와 다른 도덕이 있는 것이라는거죠. 


그런데 그런 도덕적 상대주의에서 나오는 문제가 허무주의에요. '너도 맞고 나도 맞아?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아? 그럼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되고, 내 맘에 안드는 도덕을 따라 살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는 않죠. 왜냐면 너도 맞고 나도 맞는 거지. 너도 틀리고 나도 틀린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도덕적 상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 허무주의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되질 않는 거에요. 그건 그냥 무책임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잘못됐다. 그런데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름대로 옳을텐데, 내가 저 사람에게 간섭하는게 맞나? 그런데 간섭하지 않으면, 나 혼자 지키는 도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죠.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고 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죠.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잘못된 사람이나 사회라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나름의 도덕이 있을텐데 내가 내 기준으로 재단하고 간섭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죠. 


그런데 그것은 사실 그냥 질문에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어찌할 줄 모르게 되는 함정에 빠진 거에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당신이 옳으면 옳은대로 행동을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을 하건, 사회 제도를 비판하건 자신의 양심이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누군가를 비판하면 비판받는 사람도 할 말이 있겠죠. 그러면 갈등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은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냥 못본 척 하고 '저 사람은 저 사람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하고 갈등을 피할 수는 있죠. 근데 그건 허무주의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다원주의나 도덕적 상대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론도 아니고 그냥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거에요.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양심을 무시하는 거죠. 


그러면 또, 아프리카의 미개한 문명부족도 개화해야 되고, 사회 문제를 찾아 개선해야 되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생각의 함정이에요. 자기한테 주어진 일이 있고 와닿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똑바로 하면 되지 가본적도 없는 나라에선 이렇고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이 저렇고 그런 자기랑 상관도 없는 문제를 괜히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어요. 그런 거는 잘 보면 대부분 자기 문제를 회피하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도덕적 상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방치하라는게 아니에요. 사실 저 사람은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고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할 때 누가 옳은지 그것은 아무도 몰라요. 각자 자기가 맞다고 하면 대화를 하건 숙고를 해보건 다툼이 있건 무슨 일이 생기겠죠? 그러면 한 쪽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양쪽다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어쨌든 변화가 생기겠죠? 왜냐면 저 사람 말이 그냥 개소리가 아니라 저 사람도 나름대로 내가 모르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나한테 내가 모르던 뭔가를 알려줄 수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나도 저 사람이 모르는 뭔가를 알려줄 수 있는 거고요. 


어쨌든 간에 서로 자기 주장이 있어야 변화가 있고 그게 발전이 되기도 하는 거지. 자기 주장이 없으면 발전도 없고 그 전에 자기 양심을 저버리는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내 말이 무조건 맞고 저 사람 말은 개소리' 이런 태도로 자기 주장을 하니까 발전은 없고 갈등만 커지기도 하죠. 아니면 혹시 내가 틀리고 저 사람이 맞으면 손해보는 것 같고 창피하고 수치스러우니까 '말할 틈도 안주고 무조건 밀어붙여야 겠다.' 그래요. 그래서는 발전이 없죠. 민주 정신도 아니고 다원주의도 아니고 시대에 뒤쳐진 태도죠. 


그러니까 제대로 된 도덕적 상대주의,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사람 의견도 존중하는 만큼 자기 의견도 존중해야 되고 자기 의견을 드러낼 땐 드러내야 하는거죠. 다른 사람 의견과 자기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만 있으면 설령 차이가 있고 갈등이 있더라도 그게 발전적인 일이 될 수 있고, 또 필요한 일이죠. 


이렇게 얘기해도 '그냥 조용히 사는게 낫지, 괜히 분란 일으키면 위험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위험이 있어야 제대로 살 수가 있어요. 어떻게든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면 결국 위축되고 공허해지게 되죠. 도덕적 책임이라는게 도덕적인 사회를 위해서 아니면 도덕 원칙 그 자체를 위해서 져야 되는게 아니라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살아야 자기가 당당하고 거리낄게 없이 마음 편해지니까 지는거에요. 그리고 도덕이란 것이 어디 경전이나 고전에 써 있는 게 도덕이 아니라, 자기 양심이 도덕이에요. 


경전이나 고전 같은 것은 대략적인 지침이나 애매할 때의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것은 본인 양심이라는거죠. 성문화된 도덕에 너무 집착하면 그것도 발전을 가로막는 거에요. 배워서 바뀔 여지가 있어야죠. 임제가 괜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한게 아니에요. 

작가의 이전글 총이 없는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