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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Sep 15. 2024

의사가 많아지면 좋을까

의대 증원 토론

사회자: 오늘은 의대 증원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두 분이 나오셨습니다.


준: 지방 의료의 공백이 이미 심각합니다. 앞으로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의료 수요는 더 늘어날텐데 의사 수를 늘려서 미래 수요와 지방 수요에 맞는 공급을 해야 합니다.


열: 부족한 건 의사 수가 아니라 비인기과 비인기지역 의사 수입니다. 고령화를 감안하과더라도 앞으로 인구는 줄어들텐데 무작정 의사를 늘리면 그 이후에는 초과공급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준: 의사가 많아지면 저절로 비인기과 비인기지역 의사도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초과공급이라고 하셨는데, 국내 의사 수는 OECD평균 1000명당 3.7명에 비해 확연히 적은 2.1명에 불과합니다. 지방은 1명대에요. 만약 지금 정부 지침대로 의사가 만 명이 늘어나도 2.3명대입니다. 초과공급을 걱정할 수준이 아니에요.


열: 저절로 많아진다고 보기 힘듭니다. 비인기과는 비인기과인 이유가 있어요. 수입도 적은데 잘못 의료 소송이라도 걸리면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합니다. 지역도 그래요. 젊은 나이에 누가 지방에 살고 싶어 하며 자식 교육도 기왕이면 강남에서 시키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 문제가 해결 안되면 의사를 만 명 늘려도 다 수도권에서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하려고 하지 누가 지방에서 소아과 흉부외과 하려고 하겠어요.


준: 결국 시장논리가 적용될 겁니다. 수도권 피부과가 과포화 레드오션이 되면 자연스럽게 지방에 개원하게 되고 지방 피부과도 레드오션이 되면 소아과 개원하게 되겠죠. 왜 의사만 그런 시장논리를 빗겨갈 자격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까?


라: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 수요도 따라 늘어나게 됩니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금도 보험료율 인상이나 국고 지원을 필요로 할 전망인데 의료 수요가 늘어나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질겁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만족도는 지금도 전세계 최상위권입니다. 한국에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은 게 무슨 상관인가요? 의사 많은 나라보다 지금 의료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데요. 왜 멀쩡히 잘 작동하는 의료 체계에 급진적인 개혁을 하려고 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의대 증원의 명분도, 그 시행책의 구체성도 너무 부족합니다.


준: 의사가 늘어난다고 환자가 늘어나나요?


라: 병 자체가 늘어나진 않겠지만 의사와 병원이 늘어나서 접근성이 개선되면 의료 서비스 제공 빈도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됩니다. 병원이 마케팅도 더 적극적으로 할테고요. 로스쿨 도입후 변호사가 늘어나고 법률 서비스 관련 지출이 증가한 것처럼요.


열: 2000명 증원이라는 것도 부적절합니다. 설령 미래를 위해 증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좀 더 점진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는 것이고 충분한 사전 조사를 통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진행할 수도 있는 것인데, 만 명을 목표치로 잡고 5년으로 나눠 2000명 증원을 무작정 하라는 건 대체 뭡니까? 의대에도 교육 체계가 있습니다. 그냥 한 반에 한 명 더 넣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도제식 교육이 필요합니다. 선배와 교수는 그대로인데 갑자기 신입생이 대폭 늘어나면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도 힘듭니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특권층이라는 국민 정서에 편승해 2000명 증원이라는 자극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는 정부 요구안을 따를 수 없습니다.


준: 이미 지방의료 공백은 심각한 수준이고 앞으로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역시 예정되어 있습니다. 비인기과의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수도권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료 소송제도가 완화된다고 강남에서 피부과하다가 지방 외과의하러 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수도권 과밀화는 정부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어쨌든 의대 정원 증가는 해야 하는 겁니다.


라: 옛말에, 의사와 변호사를 안 만나는 인생이 좋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아프거나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인생이 좋은 인생이라는 거죠. 변호사가 늘어나면 법적 분쟁도 늘어난다는 것은 로스쿨이 보여주고 미국 사회가 보여주는데, 의사가 늘어난다고 다르겠습니까? 의사를 무작정 늘리는 것은 작은 병도 큰 병을 만들고, 병도 아닌 것도 병으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코가 낮은 것도 면상적 질병이되고 잠깐이라도 슬프면 우울증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적고 의료 서비스 만족도는 높은 이상적인 사회에 왜 정부가 어설프게 개입하는지 참 통탄스럽습니다.


준: 의사들이 배운 분들이라 논리는 탄탄한데, 다들 너무 조심스럽고 고상한 사람들이라 대중을 설득하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이브나 정치권 쪽에서 미디어를 통한 여론전 인재를 스카웃 하기라도 했다면 지금보단 지지 여론이 많았을텐데요. 아무튼 의사는 늘려야 합니다. 의대 증원은 불가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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