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s Jan 24. 2023

선포

 prologue

작은 성공과 실패들을 오가며 크고 작은 전투들을 치르며 살아오다 우연히 만나게 된 움막은 참 편안했고 따뜻했다. 움막 안에서의 소란스러운 일들은 있었지만 거칠고 시린 야생에 비하면 간지러운 곳을 긁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Road (2022, midjourney by me)


프리랜서의 삶이란 그랬다. 두드리는 만큼 기회가 있었고 뿌리는 만큼 거둘 것들이 생겼다. 뿌린 것들에는 수시로 물과 햇빛을 가져다줘야 결국 열매까지 맺는다.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고 도중에 죽어버리는 씨앗들도 있다. 괘념치 말고 또 다른 씨앗을 꺼내 뿌려야 한다. 일이 없는 날도 많고, 일이 몰려 수시로 밤을 새우거나 겹치는 일정에 아쉽게 기대했던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풍요로운 달도 굶주린 달도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큰 싸움이다.


그러다 우연히  곳에 머물며 일을 하게 되었고 만족할 수준의 값은 받지 못했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따뜻했다. 마음이 오랜만에 안정적이었다. 야생에서 혼자 살아오다 좋은 동료들과 따뜻한 움막을 만났으니. 그리고 만족이 어려울  알았던  또한 어느 순간 적응이 되면서  동안  온실 같은, 하나의 컴포트 존에 머물면서 편안한 자세로 잠들고 머물렀다. 물론 일이 그리 쉬운 편도 아니고 밤을 새우는 날도 결코 적지 않았지만, 정말 야생보단 훨씬 편했다.


팀이란, 마치 배 같기도 했다. 하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배를 굴리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닻을 올리고 내리고, 키를 틀고 주변을 살피고 지친 이는 쉬어도 배는 달려간다. 혼자 수영하고 노를 저어 오던 드 넓은 바다를 내가 맡은 부분 혹은 그 이상 조금만 신경 쓴다면 더 빨리, 더 좋은 속도로 나아갈 수 있다. 역시 배 안에서 잦은 다툼이나 설전등은 있지만, 배에 있는 이상 떠내려가지는 않았다.    


이불은 따뜻하고 밥은 맛있으며 시간은 흘러온다. 시간에 맞게 나가 주어진 만큼의 일을 하고 밤늦게는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달이 질 때쯤 잠든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나는 어느새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고 편안한 것을 찾게 됐다. 따뜻한 것, 아늑한 것, 기름진 것, 편한 것은 자신의 기준만 조금 낮춘다면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으면 뱃살이 축 쳐 저 몸이 무거워지는데도, 턱에 살이 쌓여 내 표정을 다 가리는데도, 생각은 쿠션과 솜으로 덮여 저 두루뭉술해져 가는데도. 기준이 낮아지니 모두 다 괜찮다. 신세계의 기술력은 도파민을 과도하게 뿜어져 나오게 해 내 뇌의 보상체계를 망가뜨렸다. 목표를 나중으로 미루니 찾아오는 공허함에 이런저런 것들이 중독의 형태로 찾아온다. 나는 도파민형 인간이다. 푹 빠졌다. 공허함은 더 커진다. 개선의 마음은 수시로 내게 손을 내밀지만 나중에와 내일 이란 마귀와 아직은 괜찮아 마귀가 번갈아 나를 설득했다. 괜찮단다.


움막을 나왔다.


움막을 나오고도 컴포트 존을 찾는다. 시간이 흘러오지 않고 이젠 흘러간다. 이불은 따뜻하고 밖은 겨울이다. 잠의 끝은 그 어느 것 보다 달콤했다. 다시 맛본다. ‘휴식’이라는 명목은 시골 마루에 때는 온돌과도 같다. 등이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내 안에 한 자아가 묶인 채로 나가자고 손을 내민다. 손을 잡는 순간 나중에 마귀와 내일 마귀가 달려온다. 이들은 강압적이지도 않다. 차분한 말투로 이 자아를 잡으려는 내게 속삭인다. ‘내일부터 해’ ‘오늘은 벌써 3시야’ 그 말이 참 달콤하다. 그리고 차분하고 듬직한 말투라 되려 듣게 된다. 이 자아는 다시 사라지고 이때 괜찮아 마귀가 찾아온다. ‘괜찮아. 네가 먼저야.’


전쟁을 선포한다.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나고 축 늘어진 뱃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헬스장은 꾸준히 갔지만 여기는 변명 마귀가 붙는다. ‘무릎 수술을 했으니까 이 정도만 해.’ ‘8개만 하면 되지 10개까지 안 해도 돼.’ ‘여기서 더 하면 다쳐.’ ‘오늘은 추우니까 집에서 대충 해, 감기 걸리면 운동을 며칠을 못하는데.’

나는 내 삶을 되찾고 온전하고 올바른 나로 살고 싶었다.

이제 수많은 마귀들과 따뜻함 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나는 나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


유튜브를 한 번 키면 도파민이 물밀듯이 나온다. 유튜브를 멈출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시시콜콜한 콘텐츠들을 지나 조던 피터슨 혹은 앤드류 테이트 등의 이야기를 듣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삶은 내가 통제한다.’ 나는 이 수많은 마귀들을 물리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나는 오래 그 일을 해왔다고. 다시금 내 뇌에 세게 박았다.

그리고 변화하기로 한다. 나는 다시 전쟁터로 나갈 것이다. 수많은 싸움에서 이길 것이고 지더라도 다시  싸울 것이다. 앉아서 경쟁자들을 시기하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과만 싸운다.  자신에 붙어있는 마귀들과  편안함들과 싸운다. 어느 때보다 결의에  있었다. 바로 나중에 마귀와 내일마귀가 찾아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굴을 뭉게 버렸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첫 단계는 ‘단식’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헐적 단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