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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OT Nov 25. 2023

상사가 도움을 요청하다.

퇴근할 때쯤, 상사가 다급하게 자료 조사를 요청하셨다. 그 순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기쁨이 왔다. 고생하고 있는 상사의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도움과 관심을 보였으나, 자존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지랖 또는 선 넘는 행위일까 하여 조심하였다.


이 과정에서 상사가 타 협업부서에서 받은 피드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협업부서의 태도나 말에서 느껴지는 배려 없는 피드에 느꼈을 압박감을 생각한다면, 상사가 지금 엄청난 인내력으로 참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야근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드리지는 못했지만, 퇴근길 지하철에서 상사는 심적으로 많은 의지가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적어도 상사가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제 의지가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협업부서에서는 상사가 판단을 잘못하여, 일정이 연기되었고, 그 일을 잘 이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신다. 또한 본인이 일을 잘 풀지도 못하면서 그 일을 후임인 나를 굴리는 굿처럼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다.  본인이 무능한 사람처럼 되는 것 같다고 하신다.


그전까지는 어떤 작업물을 내면, 보통 1,2차 시안에서 끝이 났었는데 이렇게 3차까지 진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하신다. 그래서일까 더 위축이 되어 보이셨다.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말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후임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약간은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일을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3년 동안 잘했던 직원을 한 번 못했다고 나무란다면 그것이 오히려 회사가 잔인한 곳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 또한 후임이 새로 들어왔을 때 멋있는 사람, 따라가고 싶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이 지금의 상사가 느꼈을 마음을 감히 가늠을 해보고 스스로가 얼마나 더 힘들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듦이 약간은 눈을 가린 듯했지만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듯하였다.  그 모습이 사람으로서 그 사람을 실망하게 된 부분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는 부분 중에 하나고 이는 더욱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모습은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인간적인 나약함의 일부를 이용한다. 그래서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하는데, 이가 좀처럼 쉽지가 않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는 1인기업을 하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이유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나에게 넘기는 것에서 나는 판단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3차 이상의 수정 사항에서 더 이상은 자신이 하는 것보다는 후임이 하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생각해서 지시한 것은 부끄러움을 넘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일이 너무도 힘이 들어서, 회사를 관두고 싶어 하는 상사를 보면서 붙잡고 싶었다. 이 회사에 온 이유는 상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협업부서의 요구를 듣고, 일을 끌어당겨오는 상사 말고 일을 잘라내는 상사. 그 면모는 이미 보았다.


어리숙하게도 요령이 없는 나는 일을 빨리 처리하여 회사에서 속도가 빠른 사람이 되어, 일을 끌어오게 만들었다. 이게 궁극적으로 나에게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감이 든다.


상사는 갑작스러운 편집부의 마감 당김으로 인해서, 일이 많아진 나를 걱정하여 아니, 디자인팀의 전체적인 앞으로의 일을 줄이려고 하고 사람들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모습에 놀라웠다. 어떻게 협업부서의 요청의 일을 잘라내는 가에 대해서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당장 일을 잘라내는 능력이 앞으로 1인기업, 프리랜서로서는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필요한 기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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