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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수 Dec 09. 2019

내 자리 4

볼 수 없는 나 _ 20191021

 요즘 강좌들을 들으러 다니다 보면 뒤쪽에서 조용히 사진을 찍는다. 자료사진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중에 보면 나도 모르는 내 뒷모습이 보인다. 어제 친구의 SNS에도 내 뒷모습 사진이 있었다.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며칠 전, 점심을 먹고 남산 길을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찍었다고 한다. 뒷모습은 그렇게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나는 찍지 못하는 뒷모습 사진을 보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seat4_minisu


또다른 친구가 가입한 카페에 자신의 얼굴이 있는 사진을 올려야 했다.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도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 사진밖에 없어서 고민하다가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독사진은 아니고 마침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친구는 내 얼굴은 스티커로 가리고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첫 번째 댓글에 “앞에 있는 분 ㅇㅇ 맞나요?” 하면서 누군가 정확히 나를 알아보았다. 사람마다 관찰력과 기억력에 차이가 있으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사진을 보고 나를 알아봤으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 친구는 어떤 부분으로 나를 금방 알아봤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는 눈이 꽤 나빴지만 안경이 불편하다고 잘 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멀리서 오면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내 걸음걸이를 보고 바로 알아봤다고 했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나를 알아봐 주는 건 그만큼 나를 잘 아는 걸까.


예전에 심리학개론 수업 때 배운 ‘조하리의 창’이 생각난다. 4개의 창이 있다.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나, 나는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나, 나는 모르지만 타인만이 아는 나, 나도 타인도 모르는 미지의 나, 이렇게 4개의 창에 어떤 형용사들이 들어있냐에 따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다. 지금 다시 작성해본다면 나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많이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겁나기도 하다.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에 그렇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seat4_minisu


새삼 앞뒤가 있다는 것을 생경하게 바라본다. 나는 누군가의 뒷모습만 봤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의 앞모습만 봤을 수도 있다. 스쳐가는 인연들 속에서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고 비껴간다. 하지만 뒤에도 표정이 있다. 그것은 뒤에서 지켜보는 이들만 안다. 뒷자리의 아이를 위해 낮춰 앉은 극장 앞자리에서, 뒤에 오는 유모차를 위해 문을 잡고 있는 기다림에서, 낯선 여행지에서 앞장서서 길을 찾는 남편의 든든함에서 표정이 보인다. 그 표정들은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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