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 Apr 06. 2023

눈물의 시간

처음 겪는 엄마의 죽음과 우울증 앞에서 나는 길을 오랫동안 헤맸다.

어떻게 이 상황을 정리하고 헤쳐나가야 할지를 잘 몰랐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헤쳐 나왔는지 의문이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유품을 정리했다.

옷가지, 약, 영양제를 정리하고 나니 남는 물건은 없었다.

엄마의 유언에 따라 정리해야 할 현금이나 패물은 형제들과 상의해서 나누었다.


엄마의 핸드폰을 정리하는 것은 내 담당이 되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중에 저장해 둘 만한 것은 내 핸드폰으로 옮겨두었다.


엄마의 카톡 계정을 정리했을 때가 가장 슬펐다.

하나씩 카톡을 다 읽어보고 가장 먼 사람부터 차례로 방을 나왔다.


연락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전화로 엄마의 부고를 뒤늦게 알렸다.

연락을 드린 엄마의 먼 친구들, 지인들은 다들 놀랐고 한편으로 고마워했다.


일주일 정도 걸렸을까. 가족 카톡방에서 마침내 엄마를 내보냈다.

6에서 5가 된 카톡방 인원수는 어색했다.


카톡 시스템에서 보낸 '계정을 삭제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정말 이걸 지워야 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가족들과 얘기한 후 답은 이미 마음속에 정해놓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예'를 눌렀다.

곧바로 계정은 삭제되었고, 이제 더 이상 엄마 핸드폰 번호를 유지할 필요도 없기에 번호 해지를 했다.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갔다.

뭘 위해서, 어떻게, 더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동안 기도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기도가 아니라 통곡이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죽음과 내 병을 원망했다.

억울하고 분했다.


실컷 울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마음에 품고 생활을 해나가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어른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친척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러 전화를 하고 만나러 다녔다.  

나보다 더 많이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그래도 더 나은 답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어이없게도 '애를 낳아라'였다.

내가 할 일이 많이 없어서, 여유가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고 했다.

결혼 후 아이가 없는 가정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어른들의 훈계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중 가슴에 남았던 말이 있다면..

죽음은 결국엔 우리 모두가 당하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엄마의 죽음이 너무 아쉽지만 또 그렇게 억울해할 것도 아닌 이유는

우리 모두 각자 언젠간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법륜스님의 말씀도 마음에 와닿았다.

불교에서는 '인연소치'라는 말로 삶과 죽음을 설명한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이생에서의 인연이 다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그리고 내세에서의 인연이 따로 있으니 그걸 기대하면서 또 살아가면 된다 하셨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갑갑한 마음속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위로의 말이었다.


또 볼 수 있을까. 혹시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육신은 가루가 되어 땅에 묻혔지만 영혼은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 기대가 조금이나마 나에겐 위안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끝도 모르고 치솟는 분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