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담 Apr 07. 2023

위로와 자유

우울증 약을 먹고 나서 1~2주 동안은 아주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을 먹으면 기운이 반짝 솟았고, 저녁 약을 먹고 나면 자고 싶은 때 바로 잠들 수 있었다. 

잠도 모처럼 잘 잤고 머릿 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도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때 평생 이 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종교가 주는 위안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삶과 죽음의 해석을 위해서라도 종교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는 걸 몸소 느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나를 자녀 삼았다는 기독교의 말씀이 큰 위로를 주었다. 

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요, 가정 안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았던 세월이 원망스러웠으나, 내 부모의 부족함을 메우는 더 큰 부모가 되어주는 신이 계시다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법륜스님의 말씀도 위안이 되었다.

이생에서의 인연이 끝났으나 내생에서의 인연을 기대하자고. 

더 오래 사시면 좋았겠지만, 백년 전만 해도 기대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사실 많이 산 것이기도 하니 잘 살다 가셨다고 생각하자고.


새삼 인간이 왜 종교를 계속해서 믿고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게 종교를 믿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다면 얼마나 삶이 외롭고 처절한 형벌일지 생각했다. 


무교라고 하는 사람들도 일면은 전통적인 무속신앙이라든지 미신이라도 막연히 믿으며 

삶의 이해되지 않는 지점들을 해소해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어느 정도 무언가를 믿는 마음이 없다면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엄마의 죽음과 나의 병을 소화하는 중이지만, 

한참 감정적인 동요가 심할 때는 이런 종교적인 해석을 통해 힘든 마음을 털어내고 한층 홀가분해진 시점이 있었다. 


삶이 있으니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

이미 돌아가신 분을 물고 늘어지지 말고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을 잘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울증이라는 병을 맞닥드린 것도 피할 수 없었다면, 이 병을 마주하고 동행하는 마음으로 지내보기로 했다. 더 나은 내가 되도록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좋을 것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눈물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