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서너 달 동안 머리를 관리하지 않고 그대로 길러왔다.
머리 스타일을 바꿔볼까 싶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관리하지 않고 두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결국엔 시원하게 자르고 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내게 맞는 곳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내가 뭘 원하는지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살아왔으나 사실 나 스스로를 잘 모르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살아온 것만 같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기도 하고 적어보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는 언제나 내가 잘하고 싶은 것, 속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이었다.
어릴 적부터 잘하고 싶었으나 내게 기회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것.
나름대로 즐거워하는 일이었지만 남들에 비해 내가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접어 버린 꿈.
누군가 그림을 꾸준히 그린다는 것은 언제나 내가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좋아하지만 내가 늘 꾸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재작년 몇 개월을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 이것저것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직업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어쩐지 내게 잘 길이 열리지 않았다.
욕심을 다 버리고 한다면 부업으로는 가능할지언정 본업으로 그림을 그리고 먹고산다는 건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일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게 끈기가 부족해서 하다가도 멈추어섰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내게 다시 그림을 붙잡고 밥벌이를 해볼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은, 내게 의미를 주는 활동인 것 같아서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게 의미 있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강의를 들으며 조금씩 그림을 그려보고 있는데, 나름대로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즐겁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이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삶의 소소한 기쁨을 느끼게 하고, 시간을 잘 보내는 듯한 기분이다.
내게 재기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왔으면 한다.
마음의 병일랑 훨훨 벗어버리고 삶의 생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날이 오기를.
매일매일을 기쁨으로 맞으며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