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휴학했다. 영화 감독이 꿈인 나는 1년의 휴학 기간에 3학년 단편 영화 제작 워크숍에서 작품을 제작할 제작비가 필요했다. 제작비를 벌면서 경험을 쌓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방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으니 비용이 400-600만 원이 필요했다. 3-4개월 동안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 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방안 또한 고려했다. 영화 현장에 나가보는 것이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되돌아오는 사람들, 인종차별 관련 뉴스들을 접하고 부모님의 우려로 현장을 택했다. 연출이 꿈이어서 연출파트를 구하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조명팀과 미술팀의 경우 계속해서 구인글이 올라왔다. 결국 난 조명팀으로 첫 현장에 나가게 됐다. 그것이 지옥도로 진입하는 나의 첫걸음이었다.
2014년의 해는 영화 현장에서 처음으로 표준근로계약이 도입된 해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현장에 가지 못했고, 일명 통계약 방식으로 계약했다. 물론 난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이 없다.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런 식이다. 조명 감독은 제작사와 계약을 한다. 조명팀은 조명 퍼스트(조명 감독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직급)가 통으로 계약한다. 당시 조명팀은 총 6명. 6명의 인건비를 퍼스트가 챙긴다. 제작사에서는 크랭크 인 전에 계약금의 반을 주고 크랭크 업을 하면 잔금을 정산한다. 하지만 퍼스트는 우리에게 매달 월급으로 급여를 지급했다. 내가 있던 팀은 나름 투명한 팀이었고, 팀원 형들은 돈으로 장난질(책에서 나온 단어의 의미와 같다)치는 경험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다며 모든 급여를 공개했다. 나의 경우 문제는 외주(비유적으로)에 있지 않았다. 사실상 조명 퍼스트는 사업자를 낸 것도 아니니 외주로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원청에 있었다. 3월에 크랭크 인을 했고 3월은 촬영 일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월급은 꼬박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계약 방식이 이미 절반의 임금을 지불받은 상태였으니. 하지만 문제는 4월부터 이어졌다. 거의 주 6일 동안 매일 20시간 이상 촬영을 했다. 그렇게 3월부터 8월까지 이어졌다. 하루 쉬는 날은 20시간을 잔 적도 있다. 촬영이 끝나면 장비를 정리해야 하는데 그 정리 시간만 하더라도 2시간 남짓이다. 우리는 하루에 2-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많이 자는 날은 5시간 남짓. 대부분 쉬는 날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웠다.
나는 이때부터 노동 인권에 관심이 많아졌다. 이렇게 일을 하면 신체에 변화가 생긴다. 내가 겪은 변화는 잔뇨와 무력감. 누군가는 혈뇨와 탈모, 그리고 흰 머리가 많아졌다. 무거운 짐을 들어야하는 일의 특성상 허리와 어깨 질병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중간착취의 지옥도>에 관심을 갖게된 건 나의 경험 때문이 아니라 작년쯤 어머니에게서 볼멘소리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책에서 나온 원청 회사에 외주 업체에 근무한다. 외주 업체에서 지불한 월급을 다시 돌려받았다가 다시 아버지 통장으로 넣어준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다. 자신과 약속한 금액만 지불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외주 업체의 사장이 사람을 이용해 먹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든 회사가 그렇다며 불만을 갖지 않는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아버지는 책에서 나온 60대 경비원 신태수씨와 같은 생각을 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이 책에 인터뷰를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외주업체 사장은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부사수(?)라고 해야할까. 그런 부사수가 사업장을 내더니 중간에서 떼어먹고 사람이 다쳐도 별 관심이 없으니 어머니께서는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그 부사수는 사업장을 내고 2년도 되지 않아 아파트를 장만했다고 한다.
내가 노동 문제에 가장 크게 관심이 있었던 시기는 2018년이다. 이때는 영화계에서 표준근로계약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았던 시기다. 하지만 산업은 항상 변화한다. 난 언제나 일복이 많은 놈이라 표준근로계약이라는 것을 항상 비껴간다. 이때는 규모가 큰 드라마에서 조명팀을 했다. 이때 당시 난 근무표도 작성했다. 아직까지 내 핸드폰에 존재한다. 이 근무표에는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여의도로 집합을 한 뒤 지방으로 이동한다. 이동시간은 약 2시간. 새벽 6시가 넘어 도착하면 편의점 음식으로 허기를 대충 달래고 촬영에 임한다. 보통 끝나는 시간은 새벽 2-3시에서 5-6시다. 어떤 날은 정리까지 끝내니 오전 10시가 됐던 적도 있다. 그리고 다음 촬영이 없으면 서울로 올라오거나, 다음 촬영이 있으면 그 지역에서 잔다. 다음 촬영이 있으면 수면 시간은 대략 2-3시간.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르게 일당으로 계산했다. 20시간을 넘게 촬영하고 내가 받은 돈은 17만 원. 당시 내 일당이다. 내 밑에 막내는 12-15만 원을 가져간다. 이때 내가 노동 문제에 관심이 커졌던 것은 뉴스 때문이다. 노동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소식이었다. 주 5일을 기준으로 하루 8시간을 일할 수 있고, 나머지 12시간은 적절하게 추가 근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세부 내용까지 달달 외웠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의 드라마도 바뀌지 않았다. 난 2019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조명팀을 관뒀다. 물론 내가 관둔 건 난 영화 감독이 꿈이기에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았던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드라마 현장은 주 52시간 법망 바깥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2018년 당시 한 드라마 촬영팀이 죽었다. 제작사에서는 과로가 원인이 아니라고만 반복했다. 의료계에서는 과로를 원인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고 말한다. 하지만 명백히 과로가 영향이 있었다. 내가 착잡한 것은 제작사의 주장이 아니다. 그 기사에는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키스한 장면은 수없이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사람의 죽음보다 이야기에서의 애정씬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세계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분노하고 대상없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 유일하게 내 정신이 흐려졌던 부분은 “노동의 댓가를 도둑맞은 100인의 이야기”였다. 짤막한 글들은 내 분노와 원망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잠시 후 다시 펼쳤다. 꼼꼼하게 읽었다. 이름 또한 건너뛰지 않았다. 단순한 사례 나열은 책의 본문에 비하면 내 감정을 자극하기에는 비슷한 사례들의 묶음이었지만 그 비슷한 사례들은 내가 겪었던 고통을 지금 감내하고 있는 분들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었던 고통의 분노는 나의 노동의 댓가를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법망을 피해서 이득을 남기려는 그들보다는, 부당함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그 사실과 부당함이 관행이 되는 것에 있었다.
드라마 현장에서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소리치면 두 가지 반응이 온다. 투덜대지 말아라. 즉 투덜댈 거면 다른 일 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고, 또 하나는 드라마는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도 책에서 나온 원청과 하청업체의 구조와 같다. 여기는 그 어떤 스펙도 없다. 다만 인맥과 경력만이 인정받는 세계다. 말 잘듣는 스탭을 쓰고 싶어하는 감독, 불만없는 스탭과 일하고 싶은 피디들이 모든 스태프 구성을 맡는다. 그러니 누가 불만이라도 터뜨리면 다음 작품 계약은 없는 것이다. 나는 거기서 소리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왜냐하면 조명팀을 계속할 것은 아니었고, 드라마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아웃사이더였다. 그렇지만 이런 내가 눈치를 봤던 것은 조명 감독 때문이었다. 조명 감독은 계속해서 그들과 일을 해야하는데 조명팀인 내가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문제가 됐다. 조명 감독은 2014년 내 첫 작품의 퍼스트였던 형이다. 그는 2017년 아이를 낳았다. 영화를 꿈꾸던 형은 드라마가 돈이 된다며 이제는 영화를 하지 않고 드라마를 한다.
나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법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됐다. “노동자를 위한 판결의 딜레마” 파트는 절망스러웠다. 법이 바뀌면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법 조차도 바꾸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챕터에 나오는 심현우씨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나 좋은 소리인가. 하지만 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8년 여름은 폭염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여름 중 가장 잔인한 더위였다. 촬영 도중 한 명이 쓰러졌다. 포도당 한 알을 주고 그를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겼다. 하지만 촬영은 중단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촬영팀의 사망 사고 이후 촬영은 하루만 중단됐다고 들었다. 2018년에 같이 일하던 동생이 다쳤다. 심하게 다쳐서 한 달간 쉴 수밖에 없었다. 제작부에서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오는 길에 제작부원은 그에게 실비보험이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그 실비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물론 쉬는 시간 동안 급여는 지불되지 않았다. 원청은 그 어떤 책임도 없다. 하청업체 사장이 그의 병원비와 재해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하청업체 사장은 조명감독이다. 드라마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책임은 조명감독이 아니라 제작사에 있다고 한다. 책임은 떠밀린다. 아니 애초부터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그런 일정을 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런 문제들은 전부 지엽적일지도 모른다. 인터뷰하신 기자께서 급여를 물어보는 것이 어려웠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급여는 그 사람의 능력이고,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합법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능력이고, 그 사람의 가치이다. 그렇다면 책에 나오는 외주업체의 중간착취는 그 업체 사장의 능력이고 가치이다. 돈이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다.
책을 읽으면서 분노와 한숨이 오갔지만 그 감정이 가장 격해지는 지점은 후반부 고용부의 답변이었다. 임금 직접 지급 제도는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건설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고, 영화 현장에서도 2015년부터 차츰 늘려가서 지금은 거의 모든 현장에서 실시한다. 하지만 드라마 현장에서는 실시하지 않고 있는 제도다. 고용부의 답변은 쌓인 분노를 터지게 만들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네크라소프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난 조국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이토록 무기력함을 안겨주는 국가를. 고용부의 세 번째 답변에 표현된 경영상 비밀이라는 단어를 읽자 분노에 이어 헛웃음이 나왔다. 자본주의의 위험함을 경고한 수없이 많은 담론들은 이제 낡은 담론이 되었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것을 증명하듯 노동자의 권리보다 경영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단어.
고용부에게 면담을 요청한 대목에서 난 충격을 받았다. 거절의 이유로 “무게감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읽었을 때 고민했다. 무슨 무게감을 뜻하는 것일까. 문제의 중요성이 면담을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일까? 장관이 시간을 내기에는 너무 가벼운 문제라는 것일까? 기자들이 장관을 만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일까? 혹은 낮은 계급의 사람이라는 것일까? 다시 케케묵은 담론이 떠오른다. 자본주의는 신계급주의 사회를 만들었다는 담론. 물론 무게감에 대한 내 해석이 빗나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게감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무엇일까.
“착실하게 일해서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이 일을 택했어요. 보통 나이 서른 살이면 안정된 직장, 행복한 가정, 뭐 이런 걸 꿈꾸잖아요. 제가 엄청나게 큰 욕심을 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영씨의 말에는 회한이 녹아 있었다. 서른을 앞두고 소박한 삶을 꿈꿨던 청년은 9년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재영씨가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속앓이를 하는 사이, 어느덧 그의 30대는 끝나가고 있다. (p.110)
중간착취를 한 자들은 단순히 돈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뽐내며 살 것이다. 얼마전 LH사태가 터졌을 때 식당에서 밥을 먹던 아저씨들이 하는 대화가 떠오른다. “솔직히 저 자리에 있는데 누가 안 해먹겠어.”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읽고 난 뒤 어쩌면 우리는 지옥도에 이미 들어선 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지옥.
2021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