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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Feb 13. 2024

나의 제이커브

제이커브(J-curve): 경제, 금융, 국제 무역, 생물학, 개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특정 변수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이다. 곡선의 패턴을 보면 처음에는 감소하다가 시작점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한다. 이 모양이 문자 "J"와 유사하여 "J-곡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이커브라는 스타트업 성장모델을 표현하는 용어가 있다. 창업 시작, 시제품 출시, 변화와 전환, 비즈니스모델 최적화, 스케일업, 수익 창출 등 6단계로 나뉜다. 그중 시제품 출시에서 비즈니스모델 최적화까지를 데스밸리라고 하는데, 사업체 중 60% 이상이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실패한다고 한다.      


자기 계발을 시작하면서 여러 모임에 가입하고 있다. 참여하는 곳마다 리더가 있고, 지지해 주는 멤버들이 있다. 언제쯤이면 그들처럼 노련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계단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파이가 커질 수 있을까. 가끔 만날 때면 현재 가진 고충을 털어놓게 된다. 이 길이 맞는 건지, 잘하고 있는 건지, 계속해도 되는 건지 등 털어놓다 보면 상대방의 현재 고민도 알게 된다.

“언제까지 이 상태로 머물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은 있지만,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힘들어요.”

“전보다 확실히 바빠진 건 맞는데, 내가 가려고 한 방향과 맞는지 고민돼요.”


나만 그런 건가 했는데, 그들도 비슷했다. 데스밸리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언제쯤이면 도약할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정착할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안정적인 수입을 형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금에서야 멈출 수도, 건너뛸 수도 없다. 특정 분야에 자리 잡은 이들의 스토리를 들으면, 그들도 이 구간을 버텼다는 것을 알면서도 견디기가 버겁다.     




10년 전, 육아를 주제로 개인 블로그를 시작하며 블로거들과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며 지냈다. 특정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매체에 나오는 이도 있었고, 상품 판매로 연결해 수익을 창출하는 이도 있었고, 대형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핑계로 닫았다가 10년 만에 접속해 보니, 그들 중 십분의 일도 남아있지 않았다. 반대로, 꾸준히 소통하고 게시물을 올리던 이들은 나와 다른 공기를 마시는 듯 높디높은 인지도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었고, 몇몇은 자신의 주제를 담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만일 나도 그랬었더라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데스밸리의 끝을 지났을 수도, 육아 인플루언서로 활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스트에는 실패연구소가 있다. 실패가 삶의 일부라고 하는 노준용 연구소장은 말한다.

“복싱 경기에서 상대방을 이겼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길 수는 없거든요.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맞을 거예요. 이런 실패는 삶의 과정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실패도 자산이다. 일찍 경험하고 많은 실패를 가져봐야 한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듣고 있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가 아닌, 성공과 과정이라는 글을 보며 위안 삼는다. 현재 나의 좌표는 누구나 지나야 하는 제이커브 하단에 있음을 인정하고 조금 더 버티고자 한다.     



1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1년 뒤는 불안하지만 10년 뒤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서메리 작가가 쓴 <<회사체질이 아니라서요>>의 한 구절을 응용하며 불안함을 드러내면서도 잘될 거라고 외쳤다. 그 후로도 그럴듯한 성과는 없지만, 시제품 출시, 변화와 전환, 비즈니스모델 최적화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쉬지 않고 천천히 항해하는 중이라며 나를 믿기로 했다.     


“과정이 곧 보상입니다.”-스티브 잡스-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스페인 속담-

“실패는 잠시 겪는 좌절에 불과하며, 성공이라는 정상을 향해 반드시 밟아야 하는 계단이다.”-리즈민-     


만일,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제이커브의 끝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불안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자만하거나 안주할지도 모른다. 갓 태어난 아이가 뒤집고, 기고, 걸으며 성장하는 것처럼, 당연히 지나야 하는 과정이다. 가다 서고, 넘어지고, 뒤처지더라도 곧게 나아가, 다음 단계로 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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