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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Mar 14. 2024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전 5시 5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밤새 잠을 설친 탓이겠지.

어제저녁, 축구 학원을 다녀온 첫째가 또 어지럽다고 했다. 미열이 심해질까, 컨디션이 안 좋아질까 옆에서 자다 깨다 반복했다. 한잠 든 아이를 보니 한시름 놓였다. 다시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차피 못 잘 거 운동이라도 가자며 나섰다. 

6시 10분부터 7시까지 수업이 진행되지만, 혹시나 싶어 중간에 나와서 후다닥 씻고 집에 돌아왔다. 기상 알람에 일어난 아이는 어제보다 괜찮다며 등굣길에 나섰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내일 학교에 못 갈 것 같았는데. 혹시나 해서 내 일정도 미뤘는데. 갑자기 시간이 널찍해졌다.




오전 8시 20분. 집 안이 조용하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펼쳐서 오늘 읽을 분량만큼 읽었다. 단톡방에 게시글을 올리고 나니 하품이 몰려왔다. 휴대폰을 들고 침대로 갔다. 영어회화 앱을 열어 리스닝 버전을 켜자마자 잠들었다. 눈 떠보니 10시다. 한 시간 남짓, 휘황찬란한 꿈을 꾼 거 같기도 하고, 깊은 잠에 빠진 듯 안 빠진 것 같기도 하다. 한 시간이나 잤는데 또 눈이 감겼다. 10분만 더 자려 했는데 40분이 지났다. 


오전 10시 40분. 식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어 <한국 교육 검정원> 사이트를 열었다. CS 강사 자격과정을 듣는 중이라 오늘 공부할 화면을 열었다. KTX 승무원 근무기간을 포함하면, 10년 이상 서비스직에 몸담아서인지 강의 내용이 쉽게 이해되었다. 어쩌면 2024년에, 2006년에 만들어진 영상을 보고 있어서 그럴지도. 시대에 뒤떨어진 공부를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왜 강의를 업데이트하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게 어디냐며 수강생의 자세로 참여했다.


오전 11시 30분. 핸드폰과 차 키를 들고나왔다. 오늘은 2주 만에 마사지숍에 가는 날이다. 최근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먹고 씹고 마신 덕분에 얼굴과 몸도 커졌고, 턱 근육도 질겨졌다. 한 시간 반 동안 뭉친 어깨와 턱 근육을 풀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오후 2시. 남편이랑 한식 먹으러 보리밥 집에 갔다. 빨리빨리 먹는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맛있는 음식 앞에서 또 무장해제다. 20분도 걸리지 않아 보리밥 정식과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첫째는 하교 후 운동하러 가고, 둘째는 영어학원에 갔다. 집에 와도 여전히 나 혼자다.


오후 3시. 의자에 앉아 『총 균 쇠』를 펼쳤다. 처음 읽을 때 어렵다고 느꼈던 부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관련 자료와 영상도 찾아봤다. 새로운 질문도 떠올랐다. 연필로 군데군데 메모해가며 빠져들었다. 


오후 4시. 갑자기 멍해졌다. '뭘 해야 하지?' 낮에는 카톡 확인을 잘 안 하는 편인데, pc 카카오톡을 열어 여기저기 메시지를 남겼다. 평소에는 답글도 잘 안다는데, 오늘은 이방 저방 기웃거리면서 댓글도 남겼다.


오후 4시 20분. 훈련을 마친 첫째가 전화를 했다. 피아노 학원 갔다가 한 시간 뒤면 온단다. 시계를 보니 그때는 둘째도 올 시간이다. 

오전부터 뭘 했는지 필름을 되감아본다. 글쎄. 이렇다 할만한 게 없다. 푹 쉰 건 맞지만, 이렇게 마무리하려니 아쉽다.


오후 4시 30분. 빈 종이를 꺼냈다. 매일 글 쓴다고 선언하고선 격일로 실행하는 모습을 반성하는 메모를 끄적이다 글감을 찾았다.

'그래! 오늘 있었던 일을 쓰자'

막상 쓰려니 뭔가 막힌다. 내 하루에 메시지가 없다. 어쩌지. 뭐라고  써야 하나.




그러다 문득, '모든 글에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라며 상황을 종결했다.

있었던 일 그대로 쓰자. 굳이  메시지라며 글에 치장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그대로 쓰자. 느낀 감정 그대로. 그냥,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비생산적인 일과로 채운 하루도 괜찮다. 내가 편했고, 좋았으면 된다.

현재 시간 오후 5시 10분. 십 분 뒤면, 두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예정이다. 오늘 같은 날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너무 자주는 곤란하다는 이중적인 생각을 하며 내 시간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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