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사유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우 Aug 17. 2023

당연히 여전히 있었어야 했을 일



매월 10월 마지막 주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주간이다. 10월 31일 할로윈이 있기 때문이다. 내 유년시절은 할로윈이 그렇게 큰 행사가 아니었지만, 생경하게도 지금 아이들에게는 할로윈은 무척 즐겁고 중요한 날이다. 매년 문화다양성교육으로 할로윈 축제에 대해 알아보고 미술시간에 관련된 교육활동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신나하곤 한다.

그 날은 2022년 10월 27일 금요일이었다. 할로윈을 맞이한 올해 미술시간에는 뭘 할까, 하다가 잭 오 랜턴 만들기를 했다. 커다란 호박 속을 파서 얼굴을 새기고 그 안에 촛불을 집어넣는다는 문화를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했다. 우리는 호박 대신 종이컵에 주황색 색종이 2장을 4등분하여 둥그스럼하게 붙였다. 알록달록 색종이를 삼각형 모양으로 데굴데굴 접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검정색종이로는 눈코입을 그려 가지각색으로 만들어붙였다. 색종이를 접고 오리고 붙이는 것은 꽤 정교하고 섬세한 조작활동이기에 아이들은 한시간 반 가까이 꼼지락거리며 무척이나 열심히 했다.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호박등불들이 하나 둘 완성되어갔다.
ㅡ선생님 ! 풀이 잘 안 붙는데 테이프로 해도 돼요?
ㅡ선생님 전 눈을 컴퍼스로 그렸어요.
ㅡ선생님, 여기 안에다가도 촛불 넣어도 돼요?
아이들은 물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신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엉뚱하고 창의적인 질문을 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활동일수록 당연하게도 말과 질문은 더 많아진다. 능숙한 아이들은 모둠 친구들을 도와준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정말 진심으로 기뻐한다. 엄지손가락으로 최고! 표시를 해주거나 정말 능력자다! 능력을 베풀고있구나! 칭찬을 듬뿍 해주면 베시시 웃는다.


금요일에 다들 열심히 만든 잭 오 랜턴을 아이들은 당일에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했다.
ㅡ우리 다음주 월요일이 할로윈 당일이니까, 그 날 재미있게 반에서 축제하는 거 어때요? 주말동안 교실에 호박등불을 뒀다가 그 날 간식도 서로 넣어주고!
ㅡ우와아아 좋아요 좋아요 그게 좋겠어요 !
아이들에게 가져올 수 있으면 친구들 28명 숫자만큼 28개의 작은 사탕이나 쵸콜릿을 가져와 나누자고 했다. 아이들은 너무도 좋다고 하며 그 날 호박바구니에 가득 담아가야지! 낄낄댔다. 우리반 사물함 위에는 웃는 아이들 명수만큼 똑같은 개수의 잭 오 랜턴들이 웃는 얼굴을 하며 가득 그득 올려졌다.


그리고 주말이 되었다. 주말동안 학교에서는 긴급연락이 와서 혹시나 모를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보호자와 학생들을 파악하라고 했다. 또한 국가에서 정한 애도기간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할로윈 관련된 복장이나 준비물을 일절 갖고오지 않도록 안내했다. 학교에는 조기가 게양되며, 할로윈 관련된 작품들도 가급적 전시하지 않는 것을 권장했다.


급하게 보호자 분들께 안전확인 겸 전체 안내 문자를 전송했다.
[안녕하세요. 이태원 참사로 인하여 보호자분들께서도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월요일에 어린이들과도 차분하게 애도의 시간 및 이러한 참담한 사고에 대한 마음가짐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안내를 받으시고 보호자분들께서도 잘 알고계시겠지만 등교 때 할로윈 관련된 복장을 입거나 착용하지 않도록 해주시고 관련 준비물 또한 가져오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간식은 혹시라도 이미 준비한 것이 있다면 각자의 가정으로 다시 보낼 예정이오니 너른 양해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경건하게 위로하고 서로를 보듬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함께 지도 부탁드립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메세지를 적으면서도 마지막 말이 “감사합니다.”가 적절한지 잠시 고민했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10월 31일 월요일. 할로윈데이에 만난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아니, 쓰다보니 ‘어른스럽다.’라는 말도 적절치가 않다. 세상에 어른같지도 않은 엉망진창인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어른스럽다’에 들어가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편견을 생각해본다. ‘어린이스럽다.’가 오히려 훨씬 높고 넓고 위대하고 장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할로윈 관련된 머리띠나 옷, 소품도 하지 않고 간식도 아무도 가져오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의 약간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도 뜻밖에 차분하고 경건했다.


아이들과 이태원 참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묵념하고 추모의 마음을 각자 표현하는 시간도 가졌다. 참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모르는 아이들도 있기에 최대한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자꾸 목이 메고 어떻게 말을 이어나갈지 모르겠다가 깊은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괴로웠다. 세월호 때와 비슷하다. 매년 4월 16일마다 세월호참사를 추모하고 생존수영을 배우게 된 아이들이 이제는 매년 10월 28일마다 이태원참사도 기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


한 명 한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단순히 세 자리 수 숫자로 나열되고 OOO 참사로 이름붙여진다. 그걸로는 도저히 감히 가늠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크나 큰 무게감에 짓눌린다. 이 지경밖에 안되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도 절망스럽고 비극적이며 참담하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안전에 대해 말할 수 있나. 지켜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누군가는 계속 책임을 다 하고 있으며 끝까지 책임을 다 할거라고, 그러니 국가 시스템과 어른들을 믿으라고 할 수가 있나. 이런 일은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일어나선 안됐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쉬는 시간에 우리반 한 아이가 다가와 시무룩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ㅡ선생님, 그러면 이제 내년부터는 할로윈 없는거예요?
순간 뭐라 말해야 할지 어려워 잠시 숨을 고르었다가,
ㅡ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 분들에게는 아마 이제 영영 없겠죠? 그러니 우리 지금은 서로를 위로해줄까요?
아이는 끄덕끄덕했지만 이 대답이 적절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있었어야 했는데
여전히 있었어야 했는데


사라진 것들이,
없어진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게 너무 슬프고 그저 앉아서 슬퍼만 할 수 있어서 그게 마치 쉬운 것처럼 느껴져서 겨우 운 따위로 비껴갈 수 있었던 게 괴롭고 처절하게 슬프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됐다. 이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됐다.


많은 희생자들의 사고와 죽음을 통해 그 덕분에 이 세상에 많은 안전관련 규칙과 법들이 생기게 되었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가 아니라 죽은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 곳에 간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그리고 지겨우니까 그만 말하라고? 사람이 사람에게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나. 도대체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돈이 문제인가? 그걸로 서둘러 덮어쓰기 하고 있다는 걸 모르나? 억만금 조만금를 줘도 싫을텐데. 사람의 생명이 돈으로 치환이 되냐고.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영영 사라졌는데 지금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자처벌과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나? 이게 국민을 보호할 사회시스템을 갖춘 국가인가?



 그러니까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너도 나도 다같이 어디서든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누렸어야 했다. 실은 축제를 안 해도 된다. 그저 우리는 매년 10월 31일마다 할로윈을 생각하면 이토록 참담하고 비통하게 슬퍼지지 않았어야 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모두 당연히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어야 했다.


글 이호우  2022.11.1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