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내 인연을 찾아서―결혼정보회사
어느 합리주의자의 결혼사전 1.
결혼
- 경제적 또는 정서적으로 혼자 살 여력이 안 되는 남녀가 정치적 동맹을 맺음.
1.
지난 8월 코로나19 감염을 계기로 결혼을 결심했다. 전염병의 여파로 머리가 살짝 돌았기 때문은 아니었다(감염이 뇌질환을 일으킨다는 소문은 있었다만). 7일의 격리 끝에 나는 도무지 혼자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지는 내내 아무하고도 이야기 나누지 않고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는 삶, 그 막막한 시간을 백세가 되도록 반복해야 하다니. 서른 살 이후 연애가 뜸해지면서 ‘이대로라면 비혼도 가능하겠는걸’ 싶었던 참에 정신이 번쩍 든 셈이다.
격리 동안 나는 어떤 가련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만약 부모님이 내 곁에 없었다면? 누가 나를 육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지켜줄까? 누가 고열에 시달릴 때 응급실로 데려가주고, 보호자로서 서명을 해주고, 저녁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고, 무엇보다 내가 낫기를 간절히 기도할까? 뭐, 말하다 보니 애인보다는 요양보호사가 더 필요한 듯 들리지만… 보호사와는 뽀뽀를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종합하자면 내게는 젊고 섹시하고 똑똑하고 성실한 남자 보호자가 필요했다. 우리 사회가 남편이라고 부르는 사람 말이다.
나도 안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이며, 자유주의 사회에서 결혼이란 로맨스의 종착역임을. 우리 문화에서 커플은 결혼을 헌신의 상징으로 여긴다. 혼인률이 떨어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결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현실에서 결혼을 기피한다는 말은 결혼 제도를 대단히 존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면, 합리적 사고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짜릿한 아이컨텍이나 길거리 번호 교환보다는 장기적이고 분석적인 안목으로 애인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정보회사를 제 발로 찾았다. 내돈내산 내 인연을 찾기 위해서.
2.
사회학 전공자가 듀오를 가입하는 기분은 흡사 대학원생이 설문조사를 나갈 때의 마음과 같다. 3백만 원을 고스란히 지불하면서도 호기심과 설렘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민머리에 배 나온 아저씨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커플매니저는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자만추가 어려워진 남성들이 대거 가입했다며 등을 떠밀었다. 공무원 연금을 받는 아버지를 둔, 서른 살 공기업 대리는 1등 신붓감이라며 가입만 하면 남성 회원이 줄을 선다며 부추겼다.
공무원 연금 받는 아버지랑 1등 신붓감이 무슨 상관이지?
난 또래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도 아닌데 듀오라고 다를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매니저는 한 가지 말만은 지켰다.
두 달 동안 소개팅이 정말로 끊임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민머리에 배 나온 아저씨도 없었다. 하나같이 자기 관리(헬스, 골프, 서핑)가 철저하고 용모가 준수하며(까다롭지 않은 내 눈높이도 한몫했다) 공기업·대기업을 다니는 성실한 남성들이 나왔다. 이게 웬 떡이람? 매주 한 명씩, 많게는 두 명씩(토·일요일) 소개를 받았고, 피곤할 때도 만남을 미루지 않기 위해 영양제를 먹어가며 만남 장소로 나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가을이 되니 친구와 동료로부터 소개팅도 잡혔다. 겨울에 접어들 즈음 달력을 보니 만남 상대가 열여덟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런 메모를 일기장에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나 마음 맞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곧이어 위 메모는 두줄 그어져 있었다.
바로 다음 주, 그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림: Edmund Blair Leighton, 혼인신고(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