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창우 Nov 21. 2023

확장성 있는 창업에 대하여: 소프트웨어와 식당

 나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내가 소프트웨어에 매력을 느꼈던 가장 큰 요소는 그 압도적인 확장성이었다. 코드 설계만 잘 되어있다면, 유저 1명이 그 프로덕트를 추가로 사용했을 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한 번 Product Market Fit을 찾아 수익-비용 균형을 달성하면, 그 때부터의 매출은 거의 100% 수익으로 연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유튜브 서비스의 압도적인 영업이익이 그 근거였다.

 그런데 직접 일을 해보니, 소프트웨어가 생각보다 그리 확장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론적으로 만 명의 유저와 100만명의 유저가 사용하는 코드는 동일해도 된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아주 이상적인 조건에서의 이야기다. 보통 스타트업들은 기술부채를 짊어지고 빠르게 기능을 개발한다. 그래서 만 명의 유저를 수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기껏해야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코드와 인프라를 사용한다. 유저가 급격하게 쏟아져 10만명을 넘긴다면, 서비스는 곧바로 장애를 낼 것이다. 

 그렇다면 만 명짜리 서비스가 100만명짜리 서비스가 되기 위해서는 비싼 개발자들을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대기업에서 많은 동시 접속자 수를 감당해본 사람들을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개발 언어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서버 코드는 Python, Typescript(Javascript)로 작성되어 있는데, 한국에서 대규모 트래픽을 감당해본 서버 개발자들은 주로 네이버, 카카오, 라인 출신이며 Java를 사용한다. 따라서 코드를 Java로 갈아치우는 데 몇 달을 사용해야 하며, 이 기간 동안 기능 개발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기술 부채의 댓가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몇 달 동안 경쟁사가 치고 나가 유저를 끌어들이고 네트워크 효과로 해자를 구축해버릴 수도 있다. 

 이 걸로도 끝이 아니다. 인프라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는 인프라도 바꿔야 한다. AWS를 사용하는 것이 정석인데, 많은 스타트업들이 크레딧 보상 등에 넘어가 GCP, MS Azure로 인프라를 시작한다. 역시 비싼 devOps 엔지니어가 고용되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GCP 등 특정 플랫폼에 코드가 묶여있을 수 있다. GCP의 특정 기능, 예컨대 Bigquery 등을 사용한 코드는 인프라를 교체하면 갈아끼워야 한다. 이 작업에도 역시 엔지니어링 공수가 들어간다.특히 머신러닝, 딥러닝, 그리고 그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 엔지니어링이 들어가는 순간 업무는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하지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조직 문화다. 아무리 IT기업이라 해도 대기업은 대기업이다. 수직적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 이를 우려해 설립된지 얼마 안 된 대형 스타트업에서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스타트업 이전 배경이 대기업이라면?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그대로 잔존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기존 구성원과의 충돌은 피하기 어렵다.

 요컨대, 소프트웨어는 생각보다 확장가능하지 않다. 보다 중요하게는, 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조직이 확장되는 데는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작년쯤 나는 이런 고민을 한참 하다가 명절이 되어 고향의 친구들을 찾았다. 그 친구들도 창업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는 당연히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내 경험의 한계가 거기까지였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들의 창업은 주로 식당 창업이었다. 디자인 감각이 있는 친구들은 카페 창업을 생각했다. 지방대를 나오면 공무원/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게 정석이었고,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진로가 마땅치 않았다. 기존 커리어의 보상이 낮으니 오히려 과감하게 창업을 시도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창업은 주로 식당이나 카페 창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생각보다 확장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1호점을 내서 잘 되면 2호점, 3호점, 4호점을 냈다. 음식을 만들고 인력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쌓이니 1호점에 들인 공수보다 2~4호점에 들인 공수가 훨씬 적었다. 1호점에서 일을 같이 해보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직원을 2~4호점에 점장으로 보냈다. 스타트업 씬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세계관이 너무 좁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창업은 자기 일을 시작해서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수단,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가 우월하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프로덕트를 찾고, 그것을 만드는 일을 사랑한다면, 어떤 형태든 창업을 할 수 있다. 꼭 투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 자기 자본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번 본인이 성공한 패턴은 유사한 영역(지역/섹터 등)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창업은 확장 가능성이 있다.


 성공의 방식에 정답은 없고, 본인에게 맞는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도회사, 토스, 그리고 사람을 쓴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