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기 좋은 주말 아침이다. 도서관 오픈시간에 맞춰서 기다렸다가 도서관에 왔다. 햇살은 맑고 바람은 투명하고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지방 소도시 주말아침이 특별할 게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쪽 큰길을 건너면 바로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논 사이에 난 길을 걸으며 누릴 수 있는 가을 풍경은 제법 근사하다. 그렇다고 외진 곳도 아니다. 아파트 앞쪽으로 난 길을 10여분 정도 걸으면 우리 도시 핫플이 나온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매장 두 곳과 C*V 영화관이 있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서점도 10분 거리에 두 곳 있다. 그래봤자 서울 동네서점 수준이다. 각종 개인병원이 있고 대학병원은 걸어서 30분, 차로 5분이면 도착한다. 그만큼 작고 조용한 지방 소도시다.
지역에서는 이틀 전부터 집 근처 먹자골목에서 '얼맥축제'를 하고 있다. 큰길 건너 아파트를 지나면 먹자골목이 시작된다. 불금에 제법 붐비는, 20~30대 젊은 주당들이 몰리는 곳이다. 먹자골목 인근 작은 공원 옆에 포장마차를 임시로 설치하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함께 근무하는 주당 동료의 말에 의하면 축제 개막 첫날 포차에는 앉을자리가 없어서 헛걸음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통 큰 시장님이 개막 당일에 한해 지역화폐카드로 결제 시 30% 할인 공약을 시행했다는 후문이다. 가수가 초대되었는지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시끌시끌했다.
정이흔작가님께서 최근 탈고하신 '남과 여 '소설 주된 배경이 되었던 포장마차가 궁금했었다. 포차에 대한 청년시절의 기억에 이끌려 한 번 방문하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는 그런 포차가 없다. 아마도 거리 정비로 실내 포차로 모두 바뀌지 않았나 싶다. 댓글에 포차에 대한 로망을 올렸더니 옛 낭만의 포차가 아니라고 조언해 주셨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주당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눈치 없이 기껏 국수나 안주만 먹기엔 용기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포장마차의 낭만은 그저 추억 속에서 소환하는 수밖에.
어제 근무 중 반가운 카톡메시지를 받았다. 지난달 지역도서관에 신청한 희망도서 중 한 권이 선정되었고 신착도서 우선 대출권한을 준다는 소식이었다.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내가 당당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여등(오서하) 작가님의 동화책 나를 닮은 친구 A.I.
(나는 여 등 작가님의 은밀하고 농밀하게 빠져드는 밀랍 같은 문장들을 정말 동경한다)
물론 이 책을 나는 지난달 지역서점에 구매신청 해놨다가 소지했었다. 동화책 내용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또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쓰여서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이 좋은 책을 알리고 싶었다.
책을 대출받으면서 책 선정에 대해 문의했다. 희망도서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선정되는 것은 아니고 심사기준에 적합해야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기준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바쁜 도서관 직원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어서 그만두었다. 어쨌든 나의 희망도서 신청은 계속될 것이다.
어린이 종합 자료실을 나와서 일반도서 자료실로 올라와 두 권의 책을 대출했다.
레민 작가님의 최근 글에 소개된 '비둘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와 베리티 작가님의 최근 글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댄 에리얼리 지음'이다.
책 리뷰를 하시는 작가님들이 많지만 매번 내 마음을 차오르게 하는 두 분 작가님 글에서 나는 숨 막히는 문장들 사이를 유영하곤 한다. 현직 방송작가 일을 하시는 베리티 작가님과 독서잔고가 한국은행 수준인 레민 작가님.
베리티작가님의 필력이야 공인된 것이니 두 말할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레민작가님의 명문장을 더 많은 작가님들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은 작가님들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세 권을 대출한 기쁨을 즉석에서 나누려고 종합도서실 PC ZONE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이 글을 쓴다. 귀에서는 테너가 부르는 Moon River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