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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리 Apr 03. 2020

이혼, 누구보다 잘 하고 싶다.

이혼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까지.

결혼한지 3년차. 두 돌 지난 딸아이 하나도 있다.

누구나가 그렇듯 웨딩마치를 올리고 깨볶는 신혼생활만을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서로의 사정상 1년간은 주말부부를 했어야 해서 나는 무엇보다 그것이 애닳았다.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는 브런치라는 소중한 공간에서 구구절절 신세한탄, 역사기록지 마냥 오만가지 일들을 그저 나열하게 될까봐 지금 다시 가다듬고 글을 이어간다.

주변에서 매체에서 이혼이라는 것은 수도없이 보고 듣고 했으며 공감해서 같이 화가 나기도 하고, 도대체 왜 이혼을 하지 않는지 답답한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라면 바로 이혼해야지 되뇌이곤 했다.

나는 매우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여성이 결혼해서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여건으로 되는 것이 싫었다.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맹모삼천지교의 표본 아니 그 이상이었던 어머니 덕에 나는 제법 반듯하고 착실하게 자랐다. 그럼에도 자라면서 순간순간 어머니의 허탈함이 보였다. 지금 나와는 다른 문제로 고질적인 시댁문제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셨다. 모든 준비가 되었음에도 경제력 단 하나가 안 되어서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얼마나 사람 자체를 비참하게 하는것인지 슬픈 것인지 안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든 나중에 이혼하든 어찌될지 모르는 앞날에 준비한 총알 하나는 스스로 돈 벌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래, 지금 당장 이혼해도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혼을 하지 못하고 신중하다는 명목하에 여기다 글을 쓰고 이렇게 머뭇거리고만 있는것인가. 그 원인들을 내 안에서 파악해야 하며, 찾았다면 하나씩 지워나가야 내 이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일단은 토해내고 싶어서가 맞겠다. 혼자 고민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가 휴대폰 메모장에 비밀일기로 적어나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까. 그리고 더불어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왠지 모르게 타자치는 이 느낌이 이 소리가 매우 좋다. 보통 이혼을 하고 나서 돌이켜보며 쓰는 글들이 많은데 현재진행형으로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브런치 독자들과 함께 이어나가는 것도 나름 색깔있는 글이라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주말부부가 끝나고 드디어 같이 살게 되는 날이 왔다. 매번 열차를 타고 새벽에 떠나고 지치기도 했는데, 당분간은 현모양처로 소꿉놀이마냥 살림꾼이 되어보겠다 생각했었다.

같이 지내고 한 달 여 지났을까. 그 때부터 나는 남편 과거, 남편 유흥, 판도라의 상자, 놀아 본 남자,이혼...까지 검색하고 읽어보고 고민하고 울어보고. 그렇게 내 관심사, 머릿속 생각, 삶의 방향이 흐트러졌다. 나열된 단어들만 보아도 어떤 문제로 이혼을 생각하는지는 대략 아시리라.

지금에야 탐정 못지않게 그런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무엇을 해야하고 하지말아야 하는지 나만의 가이드라인이 서있지만, 당시는 그저 부들부들한 나머지 자는 그를 깨워서 울분을 토한 것이 전부였다. 정말 각양각색의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결코 잊지 못하는 순간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때의 일이다.

어찌할 줄 몰라 울부짖는 나를 보며 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뭐 갖고 그러냐 휴대폰 좀 보자 하고는 그것을 지워버린 것이니까. 내가 그저 순수하게 사랑하고 바라보았던 그한테서 한 대 얻어맞은 순간이었다. 그는 내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고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그의 일부를 항상 의심하고 바라보았으며 해명을 믿지 못하고 직접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근본적 원인은 그에게 있긴 했지만,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을정도다. 그는 덮길 바랐고 나는 계속 헤집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것을 알고싶어 헤집었는데 자꾸 다른 것들이 튀어나와서 알아야 할 것들만 더 추가되었다. 나 스스로도 멈췄으면 좋겠는데 참 그도 어찌 이렇게 양파같이 까도까도 나올까. 서로 어떤 처신을 했어야 더 현명했을까. 그는 별거 아닌 마냥 치부하며 들춰서 상상하고 문제를 키우는 나를 탓했다. 나는 정말 상상이길 바랬으나 언제나 진실은 더 냉혹함을 확인했다. 지금 현재는 아니지 않느냐. 지나간 일이 어떠한들. 그런데 지나간 일들이 내 그릇으로 주워담을 수 없는 지경인데다 어쩌지.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다. 현재는 아니라 강조하던 그의 속내를 마주한 때. 그의 해명과 평소 나눴던 이야기들이 내가 마주한 그의 속마음과 대조되며 가슴에 하나하나 새겨졌다. 아, 나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저 사람은 이중화되었구나 그렇게 결론지어졌다.

그에 대한 기대감은 씨앗마저 깨졌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나 아는줄 모르는 그가 나한테 전화를 하고, 집에 와서 들떠서 자기 관심사를 얘기할 때면 나와의 미래를 얘기할 때면 순간 미안함이 스쳐간다. 글 쓰다 보니 나왔다. 매몰차게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 하나. 속을 알았음에도 겉모습에 속는 내가 문제다. 이것을 구분짓지 못하면 이혼 후 삶이라고 더 나아지겠나. 나는 스스로도, 다른 누가 봐도 완벽한 이혼을 꿈꾼다.


다음 글부터는 섹션별로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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