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에세이 2부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필사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미 노트와 펜을 꺼내 놓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하죠?
'어떤 책으로 시작하지?', '내 글씨가 너무 못생겨서...', '매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나 처음은 서툽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시작이 아니라, 용기 있는 시작이니까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당신이 오늘 밤 당장 시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함께 나눠볼게요. 마치 오랜 친구가 곁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듯이요.
최은숙 대표는 중요한 조언을 합니다. '글짓기'가 아닌 '글 허물기'부터 시작하라고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왔습니다. 학교에서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적받았고, 회사에서는 보고서 형식을 고쳐 써야 했죠. 그러다 보니 펜을 들기도 전에 이미 겁부터 나는 겁니다.
하지만 필사는 다릅니다. 화려한 지붕부터 지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춧돌을 다지듯 서툴게 시작해도 괜찮아요.
어느 화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못 그려도 좋으니 나쁘게 그려보라"고요.
비뚤비뚤해도 좋으니, 당신의 언어로 걸음마를 다시 시작해보세요.
저도 처음 필사를 시작했을 때 글씨가 너무 못생겨서 창피했어요. 한 줄을 쓰고 나면 지우개로 지우고, 또 쓰고 또 지우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이러는 거지?'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시작도 전에 글씨 때문에 망설입니다. SNS에서 본 예쁜 손글씨, 캘리그라피 같은 필사 노트를 떠올리면서 '나는 안 될 것 같아'라고 포기하죠.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필사의 목표는 서예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장을 통해 '나의 생각'을 만드는 것입니다.
김시현 작가의 말이 참 위로가 됩니다. 당신의 독특한 손글씨는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니라 당신 이야기의 일부라고요.
삐뚤빼뚤한 글씨도, 획이 떨리는 글씨도,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모습입니다. 긴장했을 때의 떨림, 피곤했을 때의 흐트러짐, 행복했을 때의 경쾌함. 모두 당신이라는 사람의 진실한 기록이에요.
초심자에게는 작은 성취감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콘텐츠가 좋습니다. 김시현 작가는 두 가지를 추천해요.
첫째, 인생 책으로 시작하세요.
가장 좋아하는 책,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으로 시작하면 필사의 과정이 훨씬 즐거워집니다. 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으로 시작했어요. 대학생 때 읽고 밑줄 쳐둔 문장들을 하나씩 따라 쓰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는 그저 멋진 문장이었는데, 훌쩍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쓰니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라고요. 내가 깨고 나온 알은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깨지 못한 알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둘째, 시집을 추천합니다.
시는 길이가 짧아 매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기 좋습니다.
시인의 정제된 언어를 일주일만 따라 써봐도, 내가 쓰는 말이 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김소월, 윤동주, 백석 같은 한국 시인도 좋고, 릴케나 예이츠 같은 외국 시인의 번역시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고르는 거예요.
김시현 작가는 펜과 종이의 '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만년필에 어울리는 종이, 볼펜에 어울리는 종이가 모두 다르거든요.
처음에는 문구점에 가서 다양한 펜을 직접 써보세요.
손에 착 감기는 무게감,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느낌, 잉크가 번지지 않는 정도.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당신만의 '애착펜'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거예요.
저는 지금 파일럿 카쿠노 만년필을 쓰고 있어요. 처음 만년필을 쓸 때는 잉크가 번지고 글씨가 뭉개져서 당황했는데, 종이를 바꾸니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은 MD노트를 쓰는데, 만년필 잉크가 스며들면서도 번지지 않아서 필기감이 정말 좋습니다.
펜과 종이를 고르는 과정도 필사의 일부예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당신과 잘 맞는 조합을 찾아가세요.
처음 한 달은 '하루 딱 15분'만 투자하세요.
김시현 작가와 김지용 원장 모두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여기서 중요한 팁이 있어요. 너무 재미있더라도 15분이 되면 딱 멈추세요. '아, 더 하고 싶은데!'라는 아쉬움이 남을 때 멈추는 것이, 이 좋은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는 비결입니다.
처음부터 한 시간씩 하겠다고 다짐하면 이틀 만에 지쳐서 포기하게 돼요.
하지만 15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드라마 한 편 보는 시간보다 짧죠.
타이머를 15분으로 맞춰두고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타이머가 울리면, 아무리 아쉬워도 펜을 내려놓으세요.
그 아쉬움이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 테니까요.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필사하기 좋은 시간을 정해보세요.
아침형 인간이라면 출근 전 상쾌한 문장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김시현 작가는 아침 필사를 즐긴다고 합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좋아하는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하루가 완전히 다르게 시작된다고 해요.
저도 아침 필사를 시도해본 적이 있어요. 알람을 평소보다 20분 일찍 맞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책상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일주일쯤 지나니 아침 필사 없이는 하루가 어색할 정도로 익숙해지더라고요.
직장인이라면 최은숙 대표는 점심시간을 활용하라고 제안합니다.
바쁜 직장인이 10분 정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거죠. 사무실 책상이나 카페 한구석에서 조용히 펜을 드는 시간. 오후의 피로를 리셋하는 완벽한 휴식이 될 수 있어요.
저녁형 인간이라면 잠들기 전 필사는 정말 특별한 경험입니다. 김시현 작가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무의식에 질문처럼 던져두고 꿈에서 답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저는 요즘 밤 11시를 필사 시간으로 정해두었어요. 하루 종일 쌓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이죠. 필사를 마치고 나면 잠도 훨씬 잘 오더라고요.
김지용 원장은 의지력에만 기대는 것은 작심삼일로 끝나기 쉽다고 말합니다.
환경과 시스템을 설계하는 '행동 설계'가 중요하다고요.
떠벌림 효과를 활용하세요. "나 오늘부터 필사 시작했어!" 주변에 계획을 알려보세요.
SNS에 필사 노트 사진을 올리는 것도 좋아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은 스스로를 지키게 만드는 가벼운 압박이자 좋은 동기부여가 됩니다.
저는 친한 친구에게 "나 한 달 동안 매일 필사할 거야. 못하면 저녁 쏠게"라고 선언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가끔 "오늘 필사했어?"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보상을 연결하세요. 필사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커피나 음악과 연결해보세요.
'필사 = 즐거운 보상'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면 필사하는 시간이 더욱 기다려질 거예요.
저는 필사할 때만 마시는 특별한 차를 정해두었어요. 얼그레이 티백을 우려내고, 그 향기를 맡으면서 노트를 펼칩니다. 이제는 그 차 향기만 맡아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필사 모드로 전환되더라고요.
작게 시작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세요. 며칠 빼먹었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원래 그런 것"이라고 너그럽게 넘어가고, 다시 한 문장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 오래가는 비결이에요.
저도 여행을 갔다가 일주일 동안 필사를 못 한 적이 있어요. 돌아와서 '아, 이제 끝났구나' 하고 좌절했는데, 그냥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 문장만 쓰고 자겠다고 마음먹고 노트를 펼쳤는데, 신기하게도 그날은 세 편을 썼더라고요.
혼자서 책 한 권을 끝까지 필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함께하면 가능해요.
김시현 작가가 운영하는 단체 필사의 완주율은 무려 85%에 달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최은숙 대표는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해 이 힘을 설명합니다. 어두운 밤길을 갈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은 '저벅저벅' 들려오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라고요.
매일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인증은 지치지 않고 함께 걸어가게 하는 다정한 발자국 소리가 되어줍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필사를 잊을 뻔한 순간, 다른 멤버의 인증 알림이 '저벅' 하고 울리는 것을 보면 '아, 나도 해야지'라며 다시 책상에 앉게 되는 거죠.
요즘은 SNS에 #필사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필사 노트를 볼 수 있어요. 저도 가끔 다른 분들의 필사를 구경하면서 '나도 저 책 필사해봐야겠다'는 영감을 받곤 합니다.
필사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단순한 베껴쓰기를 넘어 더 깊은 즐거움을 찾아보세요.
김시현 작가의 4분할 노트법은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페이지를 네 부분으로 나눠보세요.
본문: 원문을 그대로 필사합니다
나의 생각: 이 문장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씁니다
핵심 문장: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다시 한번 씁니다
질문: 이 문장이 내게 던지는 질문을 적습니다
이 구조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질문' 칸에 최은숙 대표의 방법을 적용하는 겁니다.
필사한 문장을 마중물 삼아 '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써보는 거죠. 예를 들어 여행에 관한 글을 필사했다면,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저는 최근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필사하면서 이렇게 써봤어요.
본문: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나의 생각: 내 삶도 지금은 사막 같지만, 어딘가에 샘이 숨어 있을까?
핵심 문장: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질문: 내 삶의 샘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 샘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쓰다 보니, 필사가 단순히 문장을 베끼는 행위를 넘어 깊은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되더라고요.
도예가 정소진 님의 사례처럼, 필사 노트에 그날의 문장과 관련된 작은 그림을 그려 넣어보세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괜찮아요. 낙서 수준의 그림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문장과 함께 떠오른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거예요.
저는 주말에 '식물 일기'를 주제로 자연에 관한 글을 필사하고, 직접 찍은 식물 사진을 출력해서 붙이거나 간단하게 스케치를 해봅니다. 필사가 글쓰기를 넘어 다양한 창작 활동으로 확장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요.
어느 날은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필사하면서, 그날 본 하늘 사진을 옆에 붙여두었어요. 그러니까 그 문장이 더 생생하게 기억되더라고요.
필사는 위대한 작가의 문장을 빌려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훌륭한 문장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비춰보고, 그 안에서 공명하는 단 하나의 문장을 발견할 때, 우리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쩌면 당신의 마음은 지금 정돈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로 혼란스러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약점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잠재력으로 바라보세요.
철학자 니체가 썼고, 수많은 필사자들이 발견했듯이, 우리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자기 안에 카오스를 지녀야만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
그 혼돈 속에서 가장 빛나는 당신만의 별이 태어날 테니까요.
이제 당신의 노트를 펴고, 첫 문장을 쓸 시간입니다.
완벽한 글씨체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비싼 만년필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손에 잡히는 볼펜 하나, 구겨진 공책 한 장이면 충분해요.
중요한 건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사랑하는 책을 펼쳐보세요.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한 문장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따라 써보세요.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쓰는 동안 당신은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자신과 만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당신만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한 달 후, 당신은 15페이지 정도의 필사 노트를 갖게 될 거예요.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 안에는 당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겁니다.
어느 날 밤, 처음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세요. 한 달 전의 손글씨, 한 달 전에 골랐던 문장들. 그것들을 보면서 당신은 깨닫게 될 거예요.
'아,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 깨달음이 당신에게 힘을 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을요.
펜을 들어보세요. 노트를 펼쳐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당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세요.
당신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고요한 혁명.
그 첫 문장이 바로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