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반에서는 다르게 말해줬데요."
자신의 오답을 보며 아이가 씩씩거렸다. 두 명의 국어 선생 중에서 앞 반을 가르치는 교사와 뒷 반을 가르치는 교사의 수업 내용이 달랐단다. 시험 문제는 앞 반을 지도하는 교사가 냈고, 뒷 반 아이들은 해당 내용을 들은 적도 없었단다. 국어 시간에 자신들의 교사에게 따져 물으니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냐고 했단다. 그 반에서 그 문제를 맞힌 아이들은 앞 반 친구의 필기를 빌려서 봤던 친구들이었다. 이후로 이 학생은 시험 전에 앞 반 친구에게 책을 빌려와 필기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냥 알아서 풀어보라던데요?"
고3 수능특강으로 시험 범위가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시험에 해당하는 교재만 4권이었다) 당황스러워 물었더니 아이의 답이 그랬다. 전체 범위 중에서 약 14강에 해당하는 부분은(읽어야 할 지문만 약 28개였다.) 학교에서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알아서 풀어보라고 했단다. 아이는 국어만 이런 건 아니라고 했다. 영어도 학교에서 수업하지 않지만 시험 범위로 지정된 것들이 상당하다고 했다. 아이와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가 가장 많이 한 말이 도대체 자기 학교 선생님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며칠 후에 도저히 못 참겠는지 몇몇이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따졌단다. 수업도 안 하면서 왜 시험 범위로 내냐고 말이다. 때마침 교장선생님이 그 대화를 듣게 되었고 가르치지 않은 것은 시험에 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와 결국 시험 범위는 조정이 되었다.
"중3인데 알파벳을 몰라 알파벳을."
방과 후 영어 수업을 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하위권이라고 전달받은 학생이었는데 수업시간에 살펴보니 알파벳도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한 수준이었단다. 그 학생의 담당 영어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도 없었다고 했다. 사실상 그 방과 후 수업부터가 해당 교사가 하고 싶지 않아서 외부강사를 고용한 것이었으니 더 물어 뭐했겠냐 싶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친구가 맡게 된 시기가 3학년 2학기의 끝무렵이라 문제의 학생과 두어 달 밖에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가 알파벳이나 겨우 학습하고 졸업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를 스쳐간 영어 선생님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것일까? 아이는 장애가 있는 어머님 혼자 키우는 아이로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라고 들었다. 그동안 아이가 왜 교사들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는지 짐작이 되면서 정말이지 욕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일에 무책임한 선생의 이야기를 가끔 들을 때마다 너무도 화가 난다. 사교육처럼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변명은 너무 무책임하다. 공교육에 있는 교사가 무임금으로 노력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사교육에서도 무책임한 선생들이 많다. 다만 그런 무책임한 선생들은 이 바닥에서 제거가 가능하다.(무능력자에 사기꾼에 가까운 이들도 있지만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다.) 우리 학원에서 출근 일주일 만에 혹은 한 달 만에 잘리는 선생들도 있었다. 수업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바로 끝나는 것이 운명이라서 무책임한 선생을 우리는 탓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르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정 수준의 성적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아이는 보강을 하고 또 한다. 그게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아이의 부진을 탓할 수는 없다. 나는 내가 뱉은 말에 실수가 있거나 해석이 오류가 있을 것 같으면 시험 전날 밤이라도 단체 문자를 돌려 정정한다. 나의 잘못된 말로 아이가 시험에서 실수를 하면 안 되니 말이다. 나도 사람이니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실수를 아이 앞에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또 했다. 이후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나의 실수를 책임졌다.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실수를 하면 안 되겠지만 실수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수업과 자신의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그런 선생들이 싫다. 화가 난다.
"매일 수업 끝나고 남기니 애가 엄청 싫어할 거 같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남편이 매일 늦는다고 했었다. 친구의 남편은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였다. 그의 학급에 아직 알파벳을 제대로 떼지 못한 학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아이를 남겨서 알파벳 공부를 하느라 삼십 분씩 늦은 퇴근을 한다고 했다. 정규 교육과정에선 3학년부터 영어를 학습하므로 5학년이 알파벳을 떼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학습 부진이다. 나는 영어과 교과 담당 교사가 따로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아니면 누가 해주겠냐며 아이를 붙잡았단다. 친구는 아이가 매일 늦게 끝나니 엄청 싫어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선생님들이야 말로 박수를 받아야 하며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책임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존경받는 세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