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학생 시절 내내 빠져 있던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 ‘원피스’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신규 콘텐츠에 올라온 원피스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정주행을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업무를 잠시 잊고 싶었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스타트업 생태계가 떠오르곤 합니다.
1997년 연재를 시작해 아직도 완결이 나지 않은 원피스는 해적선 선장 루피와 동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며 원피스라는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이 주된 스토리입니다. 루피의 밀짚모자 해적단은 같은 여정을 하면서도 동료들 각자는 매 시즌 자기를 초월하는 성장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전투하고 적을 죽여야 하는 해적판에선 누구보다 강하고 당장 잘 싸울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루피가 동료를 선택하는 기준은 조금 다릅니다. 동료가 가진 힘이 아닌, 그들의 꿈의 크기와 잠재력을 봅니다. 어리숙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루피는 사실 엄청난 설득가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루피가 동료들의 야망을 잘 자극하고 끌어내는 면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루피는 동료를 영입할 때 본인이 동료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루피의 꿈의 크기와 잠재력을 보게 된 동료는 스스로 본인의 야망을 재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다른 선장들이 갖지 못한 루피만의 설득법입니다. 대검객이 되겠다는 조로, 올블루에 가서 최고의 식재료를 찾겠다는 요리사 상디 등, 애니메이션이 연재되는 지금도 루피의 밀짚모자 해적단은 함께 모험하며 그들 각자의 야망을 이뤄가는 중입니다.
우리 팀만의 차별성으로 치열하게 생존해야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다 보면 여기가 치열한 해적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피스를 보고 필자가 함께 일하고 싶은 이상적인 팀원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당장 주어진 업무를 쳐낼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타트업과 긴 인연을 맺기 위해 두 가지 역량이 더 필요합니다.
첫째는 개인의 꿈과 회사의 비전이 얼마나 일치될 수 있는가의 ‘꿈-유사성’입니다. 꿈-유사성은 회사에 막 들어온 팀원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팀원과 회사의 관계 시간이 길어질수록 짙게 발현됩니다. 팀원과 회사의 꿈-유사성이 맞지 않는다면 회사에서의 시간은 단지 돈벌이를 위한 소모적인 시간이 되고 말 겁니다. 소모의 시간이 길어지면 팀원은 지치게 되고 이때 팀원은 연봉이 더 높은 회사 또는 꿈-유사성이 높은 환경으로 떠나게 됩니다.
두 번째 역량은 ‘성장 가능성’입니다. 스타트업은 성장의 폭이 가파르기 때문에 내부의 팀원도 그와 비슷한 속도의 개인 성장을 이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의 고객이 10명일 때는 고객과의 빠른 소통을 위한 순발력과 커뮤니케이션 정도의 역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비스가 성장해 고객이 1000명이 되고 1만명이 됐을 땐 또 다른 역량이 필요합니다. 고객 소통업무에서 중복 발생하는 문제를 자동화하는 운영 능력과 회사 내부에 충원된 상담 직원을 관리할 수 있는 관리 역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매 순간 찾아올 기업의 성장을 위해 스타트업의 팀원은 꾸준히 학습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지난 6월 필자 기업의 팀원 두 명이 퇴사했습니다. 2020년 설립 직후부터 기업을 함께 일궈온 초기 멤버입니다. 두 팀원이 퇴사를 결정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는 달랐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같았습니다. 기업과의 꿈-유사성이 달랐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비전과 개인의 꿈이 상이하면 시기만 다를 뿐 이별은 예견되어 있습니다.
폭발적인 성장을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은 성장을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5년 동안 서비스를 테스트하며 시장에 진출합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스타트업의 자금은 더 빠르게 소진될 것입니다. 부족한 자원을 잘 활용하기 위해 우리는 예측 가능한 리스크는 제외하고 처음부터 맞는 단추를 꿰야 합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게 된 요즘, 원피스를 다시 보니 오다 에이치로가 존경스러워집니다. 누구보다 인간관계를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그는 엄청난 통찰가임이 분명합니다.
_낭만농객 김농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