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Weibel. MMCA. Exhibition.
respectively, Peter Weibel. Art as an Act of Cognition
기술적 매체는 순수한 재현을 도모하지 않는다. 이들은 고전적인 예술 형식이 지닌 모방 기능을 초월한다.
매체는 기술적 인터페이스이자, 인체 기관의 인공적 확장으로 세계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페터 바이벨
국립현대미술관과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ZKM)가 공동 기획한 이 전시는 개념미술 분야에서 미디어 아트 영역을 실험적으로 개척해온 페터 바이벨의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회고전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며, 2019-20년 사이 ZKM에서 개최했던 전시를 기반으로 재구성되었다.
페터 바이벨은 예술과 과학 사이를 넘나드는 작가로 다양한 재료, 형식과 기술을 통해 문제 인식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인식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언어와 미디어, 나아가 실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를 통해 ‘논리적 접근이 지닌 치유의 효과에 대한 믿음(페터 슬로터다이크)’을 기반으로 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며 진행된다.
전시가 시작되고 2023.3.1.페터 바이벨 작가가 별세해서 입구 한켠에는 명복을 비는 문구도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항등정리:트리티티>는 페터 바이벨, 니콜라우스 레나우, 델라 프란체스카,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이 겹쳐지거나 말이 뒤섞이면서 혼합되며 합성된 이미지와 여러 인용문들을 보여준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항등정리’라는 작품명으로 묶어냄으로써 존재에 대한 가설을 의문시하고, 혼합된 인용문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 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형식과 내용은 공간의 유서깊은 홀에서 형제이자 자매이다. 나는 나 자신이 시라고 믿는다.
가장 나다운 나는 시이다’ - <항등정리:트리티티>,1975 인용문
9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비디오 설치 작품인 <감정의 화산학>은 퍼포먼스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공간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다룬다. 이를 신체를 이용한 몸의 움직임이라는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을 고찰하였다. 체현된 인지는 신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받은 자극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체현을 통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감정을 포괄한다.
다중 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이자 페터 바이벨의 대표작품인 <다원성의 선율>은 비디오, 사진, 영화와 컴퓨터 매체를 한 데 결합하고 있는 작품이다. 산업혁명부터 데이터 기반의 후기 산업 정보혁명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기술 전환을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영상 작품인 <탭 앤 터치 시네마>는 페터 바이벨과 발리 엑스포트가 거리의 행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퍼포먼스를 담고 있다. 몸에 박스를 묶은채 등장하고 페터 바이벨이 행인들에게 영화관을 방문하라며 상자속에 손을 넣게 한다.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만 봐왔던 가슴을 촉각이라는 감각으로 전환하면서 영화라는 시각매체에서 여성을 오브제로 재현되는 방식과 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관객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담아냈다.
설치 작품인 <가능한>은 8mm 필름 영사기가 스크린을 비추고 관객이 영사기와 스크린 사이를 지나가도록 만들어졌는데, 필름 영사기 앞에 서도 스크린의 글씨는 가려지지 않게 설치되었다. 이는 하나의 표상으로 보이던 것이 실재하는 사물이며, 가상공간 보다 더 큰 실재공간을 나타내고 있다.
전시장 2층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7개의 움직이는 눈, <비디오 루미나>는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을 관람하고, 관람객 역시 눈을 관람하게 한다. 1층에 설치된 <전시작품으로서의 대중(대중의 전시)>에서 전시장에 방문한 대중을 작품으로 만들고, 어디까지가 예술인지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연장선상에서 연출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존하는 공간에서의 나와 작품을 사이에 두고 어디까지가 예술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
<관찰을 관찰하기: 불확실성>은 관람객이 작품안으로 들어갔을 때 완성되는 작품으로 모니터에 비친 모습 중에서 정면의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정면을 찍을 수 없게 조작된 모니터와 카메라, 원형의 구조 안에서 조작된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보는 관람객을 통해 인간 지각 장치의 한계를 드러내며, 원형 구조 밖의 시각에서는 관점의 포로로 전락한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2층에는 다양한 인터렉티브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담을 수는 없었고, 개중에 <디지털 도서관: 디지털와의 3단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그쳤다.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전자(?) 아크릴을 통하면 책에 적혀있는 코드를 읽고 글에 적혀있는 글들이 창에 보이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너무 신기해서 어떤 해석을 하기보다는 단순히 즐겼던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어디까지가 예술인가?'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전시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기술 장치를 통해 왜곡되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미디어에 잠식 당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 ‘예술’은 인지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전시에 사용된 다양한 미디어 ‘매체’들은 감각을 연장하고 확장하는 수단 혹은 통로로 사용할 수 있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기기를 활용한 인터렉티브 작품들을 통해서도 인식의 과정 자체를 예술로 본 페터 바이벨의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