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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Jul 05. 2022

밥을 먹었다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늦은 저녁에 아들과 1시간이 넘게 통화를 하였다. 주제는 밥을 함께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직장 동료와 밥을 먹었다고 하여서 동료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었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도 생각나는 것이 없느냐고 하였더니 함께 밥을 먹었던 동료로부터 아들이 직장에서 웃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장에서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고 하였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질문을 하였다.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누느냐고 하였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부분 상대가 하는 말에 그냥 듣기만 한다고 하였다. 몹쓸 MZ세대의 특징이 드러나 보였다. 지극히 주관적인 단어인 '가성비'로 시작해서 '자기 만족'을 최우선으로 행복의 기준을 삼는 세대에게 조직이나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지는 듯하다.


혹시, 함께 밥을 먹는 동료에게 무엇이라도 질문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다 다를까 없다고 하였다. 사적인 질문이라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 묻지를 않았고 직장에서 뒷담화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터라 달리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뒷담화든 앞담화든 결국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 듯하다. 그날 메뉴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에 대한 이야기도 별다른 리액션 없이 듣는다고 하였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그런 추측을 하였다. 상대에게 한번도 눈을 맞추며 호기심에 찬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상대의 이야기에 할 수 있는 온갖 몸짓을 하며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 더 큰 두 번째 문제라고 말이다. 자신을 향해 관심을 보이고 반응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인데 아들은 사람이 아닌 사물과 어쩌면 혼자만 밥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먹어도 그만인 밥을 둘이 먹거나 셋이 먹는 것이다. 아무런 관심도 없이 묵묵하게 오늘 밥에 대해서 반찬에 대해서 속으로 평가하며 그저 밥만 먹었던 것이다. 아들이 동료에게 한번도 웃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동료에게 한번도 관심을 보이거나 호기심에 찬 질문이나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뿐만 아니라 관계의 중요성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웃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감정이라는 표현 수단을 퇴화시키고 사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세대답게 값을 기준으로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사람보다 물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며 사람을 곁에 두고도 꾸역꾸역 밥만 먹는 사람들이다.


밥만 먹는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밥만 먹을 것이다. 오늘 반찬이 싱거운지 짠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인지 아닌지 그것만 따지면서 자신이 정해 놓은 맛의 기준에 따라 혼자 흐믓해 하고 혼자 짜증내면서 상대에 대한 감정표현 없이 밥만 먹게 될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밥을 먹고 자신이 지불한 생활비의 가성비를 따지며 홀연히 의자에서 일어서 자리를 뜨는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가정의 불행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밥을 함께 먹는 다는 것은 그냥 밥을 먹는 일이 아니다. 서로를 질문하고 이해하며 관계를 소화시키는 일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건 매일 만나는 사람이건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것은 관계를 쌓아가는 일이다. 크고 작은 사소한 일들과 감정들을 교환하며 굳건하게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식구라는 말이 중요한 것이다. 밥만 먹는 관계라면 굳이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필요가 없다.


문득, 초중등학생들에게 급식의 메뉴에 대한 안내보다  중요한 것은 식사 시간에 함께 식탁에 마주앉은 친구나 동료에 대한 소통법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할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상사들이 사주는 밥과 술을 거부하는 MZ세대에게 ' 한잔 하자.' 상사의 제안은 그저 가성비 없는 시간낭비라고 받아들이는 세대에게 우리는 밥을 먹는 다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차곡차곡 예금하는 신뢰의 시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모르겠다.


아들이 나이 들어서 자신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에 가득찬 얼굴로 질문하고 크게 반응하며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는 재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나 후배들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는 어떤 성찰을 할 지 상상해 보았다. 아들에게 밥을 먹는 시간에 오직 밥만 먹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웃지 않아도 항상 웃었던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강조하며 전화는 1시간 43분 동안 이어졌다. 이 시간 동안의 가성비를 아들은 어떻게 책정할 지 궁금해졌다. 전화를 빨리 끊자고 하지 않고 그나마 나에게 질문을 이어갔으니 그나마 가성비가 있는 대화라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혼자 짐작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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