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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Aug 24. 2022

리모컨을 켜기 전에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뚜욱” 리모컨에 접속된 네모난 검정 물체는 숨소리를 내듯 빛을 발사하며 소리를 낸다. 웃음소리, 말소리,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사건은 긴박하게 진행된다. ‘모범형사’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권력의 정의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으며 등장인물은 범죄 상황을 치열하게 쫓고 해결해 간다. 세상은 안전하고 살만한 곳이라고 던진 메시지에 안심하지만 “뚜욱” 리모컨의 정지 화살을 맞은 네모난 검정 물체는 아무 일 없듯이 나와 실내를 실루엣으로 담고 있다. 


큰 덩치에 가늘고 네모난 검정테를 두르고 딱딱하고 매끈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조금 전 접속된 상태에서 심장처럼 뜨거워져 가던 중심부는 서서히 열기가 식어간다. 손으로 만져보지 않으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이성적인 존재로 착각할 수 있다. 누구나 텔레비전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감각과 관계의   온도마저 빼앗는 차가운 미디어의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다가 리모컨의 정지 화살을 쏘지 않으며 나의 사고와 관계는 정지되고 현실과 분리된 환타지 속에 삶의 감각을 담보로 검정 물체 속 실루엣으로 살게 된다.


“뚜욱”네모난 검정 물체의 접속 소리는 어쩌면 시청자의 생각 도구를 절단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을 켜기 전에 숨을 크게 쉬고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리모컨을 접속할 것인지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리모컨을 들기 전 거실 한 켠에 배경처럼 자리한 텔레비전이 소리를 내고 뜨거워지며 빛을 반사하는 시간만큼 나의 소리(사고)와 심장(정서)과 빛(영혼)을 담보로 가져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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