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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Feb 04. 2023

정월 대보름의 오곡찰밥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정월 대보름의 오곡찰밥"


해마다 옆집에서 정월 대보름 날이면 오곡밥과 나물을 그릇가득 담아 쟁반에 받쳐서 주신다. 평상시에 반찬을 주실 때면 일회용 비닐이나 그릇에 담아 주시는데 정월 대보름 날 음식은 쟁반까지 받쳐서 주신다. 젊은 사람이라 분명 정월 대보름을 쇠지 않을 거라 생각하신 옆집 아주머니께서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챙겨주신 듯하다. 


이번 정월 대보름도 어김없이 오곡찰밥과 네 가지 나물을 그릇마다 가득담아서 주셨다. 서로 왕래가 잦다보니 두 사람이 단촐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텐 데도 대여섯 사람이 먹을만큼 많은 음식을 주셨다. 작년에 정월 대보름 날 저녁 모임이 있어서 대보름 오곡찰밥을 먹지 못해서 마음이 안타까웠다는 말을 옆집 아주머니께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기억하셨는 지 이번에는 점심 무렵에 음식을 가져오셨다. 


오곡찰밥에 더 기쁘고 흐믓한 까닭은 어린 시절 생일상에 대한 든든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대가족에 농사일로 바쁜 어머니께서는 어린 자식들을 살뜰하게 챙기지 못하셨다. 그런데 자식들의 생일날 만큼은 찰밥에 미역국과 나물을 꼭 차려주셨다. 생일상 밑에 지푸라기를 깔고 이말저말 기원도 하셨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일상은 그날 하루 받은 것이지만 찰밥 덕분인지 며칠 간 든든한 마음이 이어졌다. 


어머니의 생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옆집 아주머니의 정월 대보름 오곡찰밥은 1년을 무탈하게 잘 지내라는 기원같아서 마음이 더 든든해진다. 빈그릇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만든 유자청을 유리병에 담아 함께 돌려드렸다. 고향집에 가면 입버릇처럼 이웃과 나눠 먹으라고 이것저것 주시는데 올해는 유자청을 한 병만 가져온 것이 아쉬움이 남았다. 마음 가득 담았던 오곡찰밥과 나물에 비하면 너무 작은 답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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