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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 remember Mar 20. 2023

삶의 굴곡 한가운데.02

중국으로_02

[2. 중국에서 이광성 찾기]


다음날 아침, 우리는 전해들은 대로 같은 북한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동네를 찾아갔다. 그 집에 가니 다들 우리가 온 것에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도 놀라워했다. 다 늙은 할머니와 다리 없는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강을 건널 생각을 했냐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 곳 사람들은 할머니의 손자인 이광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만 해도 할머니와 상철이를 이광성에게 넘겨주면 일이 마무리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질 않았다.


이광성은 중국에서 한 곳에 터를 잡고 살지 않고 방랑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은 이광성이 이미 며칠 전 이 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광성이 간다고 알려줬던 곳을 말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이광성을 놓칠세라 허둥지둥 알려준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생고생해서 이광성이 갔다고 말해준 곳에 도착하면 이광성은 이미 그 곳을 떠났다는 말만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방랑을 뭐 그리 열심히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할머니와 상철이를 낯선 중국 땅에서 알아서 손자 찾으라고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이광성이를 만나야겠다는 오기가 생겨 득달같이 뒤를 좇았다. 그렇게 몇 번을 한 끝에 고대해 마지않던 이광성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때 까지만 해도 ‘이야 드디어 끝이다!’하고 생각했더랬다. 이광성이도 제 할머니와 아버지를 중국 땅에서 만날거라 생각지 못했는지 눈이 휘둥그레져서 우리를 맞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다지 오래 가질 못했다.


식의주의 고난은 제 혈육도 그다지 반기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나와 명희도 중국에서 거처를 미처 마련 못하였지만, 애초에 이광성도 방랑생활을 하던 이였기에 거처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이광성도 찾았고 할머니와 상철이도 넘겨주었으니 이제 식의주를 해결해야 했다. 나와 명희는 산 중턱 어귀에 임시로 천막을 쳐 잘 곳을 만들었다. 중국 공안(경찰)에 단속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숨어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인근에 거주 중이던 북한출신 사람들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주었는지 얼마간 요기할 쌀과 된장을 주었다. 듣던 대로 중국은 형편이 더 나았는지 인심도 후했다. 덕분에 한동안의 식량은 해결할 수 있었다. 마련해둔 거처에 갈 곳 없는 이광성과 할머니, 상철이를 오라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의주가 해결되니 서로의 사정이 궁금했다.


이광성은 우리가 왜 중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사정을 가만가만 듣더니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마침 지금 자기가 북한으로 갈 일이 있으니 가는 김에 내 첫째 명숙이와 둘째 명남에게 우리 소식을 전해주겠다는 거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고 잘되었다 싶어 냉큼 부탁을 했다. 북한에 남은 두 딸이 우리 소식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튿날, 북한으로 떠나는 이광성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찜찜하고 뒤가 켕기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낌새였다. 하도 뒤가 켕겨 왜 자꾸 안 좋은 느낌이 드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에 생각이 미쳤다.



요 며칠 이광성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 돌아다니던 중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몇 전해 들었었다. 이광성이 북한여성들을 중국으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를 한다는 거였다. 그것도 속여서 아무에게나 팔아먹는 질이 나쁜 인신매매를 한다 하였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내 첫째 딸 명숙이도 이광성에게 속아 중국으로 오는 길에 인신매매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안 좋아 제 발로 인신매매를 하는 거라면 그렇다 하지만 소문대로 이광성이 내 딸을 속여서 알 수 없는 곳으로 팔아버리면 우리 가족은 사방으로 흩어져 서로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릴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아득해졌다. 세상에, 이러고 가만있다간 큰일을 당할게 뻔했다. 명희에게 지금 당장 북으로 가야겠다 말했다. 내 생각을 명희에게 전하자 명희는 우리가 이광성 보다 북에 먼저 도착해야만 한다고 성화를 부렸다. 그 길로 우리를 도와주던 북한출신 사람들에게 명희와 할머니, 상철이를 부탁했다.      

급히 북한으로 가야한다는 말을 듣자 그 사람은 나에게 ‘얼마 전에 이광성을 통해 음식이랑 옷이랑 신발을 전해줬는데 받았는가?’라 하였다. 아뿔싸. 없었다. 그 어느 것도 받은바가 없었다. 이광성은 얼마 전 갑자기 옷이랑 신발만 들고 오더니 제 할머니(노인)거라 하며 그 사람에게 주었더랬다. 이광성이 나에게 올 걸 중간에 가로챈 거였다. 다른 사람의 호의마저 가로채는 사람이 친절하게 소식만 전해줄 리가 없었다. 여기까지 겪으니 이광성을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나마 그를 믿은 내가 야속했다. 서둘러 북한으로 떠났다. 이번에는 나 혼자 도강하는 거니 일도 아니었다. 잠시 쉬어갈 수도 없었다. 나는 듯이 달려 북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내달려 북으로 간 후 집으로 가던 길목이었다. 저 멀리서 명숙이처럼 보이는 사람이 하나 보였다. 소리쳐 불러보니 정말 내 딸 명숙이었다! 하루 빨리 딸들을 찾아야겠다는 내 마음이 전해진 것인가? 한달음에 달려가 명숙이를 얼싸안았다. 명숙이도 놀란 눈치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명숙이가 이 곳에 나올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명숙이가 무사한 걸 확인하니 마음이 놓였다. 눈물이 울컥 나왔다. 그렇게 나와 명숙이는 서로를 껴안고 한동안 아무 말도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후 나는 명숙이에게 물었다. 어째 여기에 나와 있는 건인지, 혹시 이광성을 만났는지. 그러자 명숙이는 이광성이 이상한 말을 했다 답했다. ‘네 엄마가 너랑 네 동생(명남이)을 데리고 중국으로 오라 그랬다’고 말했다고.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이광성은 그냥 얌전히 소식만 전해줄 사람이 아니었다.      


이광성은 명숙이와 명남이를 꼬여내 중국으로 팔아버릴 생각이었던 거다. 그러나 우리 똑똑한 명숙이는 이광성의 말을 곧이 믿지 않았다. 그냥 ‘그러냐’고 말하고 말았다 그랬다. 당장 같이 길을 떠나자는 이광성에게 명숙이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하고 말했다 그랬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날 데리고 올 사람이 아니다. 오려고 한다면 직접 걸음을 하실 분이다. 그러니 이 사람을 따라 나서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세상에..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어리석었고 이광성은 악독했어도 똘똘한 내 딸 명숙이는 제 앞가림을 척척 해 나갔던 것이었다.

     

한시름 놓은 나는 그 길로 이광성을 찾아가서 따졌다. “내가 언제 내 딸들을 데리고 와달라고 했나? 어쩜 그렇게 도와준 사람 뒤통수 칠 생각을 하나? 사람만 봤다 하면 팔아먹을 궁리부터 드는가?” 화가나 소리쳤다. 만약 이광성이 선의로 제안한 것이라면 내 말에 대뜸 뿔을 내었을 것이다. 왜 엄한 사람을 오해하냐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광성은 내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과도 변명도 없이 조용히 묵묵하게 있을 뿐이었다. 


역시 이광성은 못된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이광성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 고개를 돌렸다. 더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날로 나는 명숙이, 명남이에게 중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라고 한 후 함께 중국으로 향했다. 어쩐 일인지 이광성은 잠자코 나와 내 딸 뒤를 따랐다. 나는 딸들을 데리고 조용히 길을 걸을 뿐 이광성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술사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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