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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 remember Sep 05. 2023

마지막 항해.04

서울에서.01

아버지가 상경하시던 때에는 몇 살이었어요?            

    1955년, 18살이 되던 해였지. 멸치잡이해서 번 돈으로 기차표를 사고, 오래된 잠바와 바지 하나만 책가방에 챙겨서 떠났어. 당시에 아침에 중앙선 기차를 타면 저녁이 돼야 서울에 도착했단다. 그 때는 지금과 달리 석탄을 때서 기차가 달렸기 때문에, 역에 내리니까 연탄가루로 얼굴이 새까매졌더구나. 대충 소매로 스윽 닦고 말았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단다.

연탄가루로 새까매진 얼굴

    서울에 도착했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역사로 다시 들어갔어. 잠깐 앉아서 쉬었는데 피곤했는지 곧바로 잠이 들었단다. 아침이 돼서 일어나보니 역사 안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했어. 그제야 바깥으로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남은 돈으로 국수 한 그릇까지 먹고 멍하니 앉았어. 어디서 일할 곳을 구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막막했단다.

    그렇게 서울 역사 안에서 지낸지 4일이 지났을 때였어. 갑자기 누가 “야! 너 재근이 아니야?” 라며 아버지에게 다가왔단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 너무 놀라서 뒤돌아봤더니 어떤 영감님이 서 있는 거야. 그 영감님은 울산에서 우리 가족과 집을 거래했던 분인데, 그 분이 먼저 나를 알아본 거였지. 영감님이 “너, 왜 여기 있나?”라고 물어보시더구나. 돈을 벌고자 서울까지 왔는데 어디 들어갈 데가 마땅치 않아 역에서 지내고 있다고 얘기했어.

    영감님이 잠깐 생각하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편지를 하나 써 줄테니, 이걸 가지고 서울 경찰국 경무과에 최현재라는 계장을 찾아가봐”라고 하시는 거야. 당시에는 경찰청을 경찰국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높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시더구나.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나요?

  경찰국에 가서 그 분을 찾았더니 정말로 만날 수 있었어. 계장님이 편지를 읽어보더니, “너 우선 당분간 식당에 가서 있어 볼래?”라고 하셨단다. 나는 어디든지 일만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좋다고 대답했지. 그렇게 해서 갔던 곳은 명동에 고려정이라는 불고기 식당이었어.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고 흔적도 없더구나. 식당에서 매일 불판을 물에 불려서 닦는 일을 했는데 깨끗하게 잘 한다며 사장님에게 인정도 받았었단다.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남은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준 거였어. 깨끗한 건 모아두었다가 밥이랑 같이 실컷 먹었단다. 그 때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컷 먹었던 때였을 거야. 영업이 끝나고 나면 식당은 전부 빈 방이었기 때문에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도 거기서 지낼 수 있었단다. 식당에서 일하는 동안 먹고 사는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지.


식당에서는 얼마 동안 일을 하신 거예요?     

    거의 1년 정도 일했단다. 1년이 지났을 때 즈음 어느 날 경무계장님이 아버지에게 다시 경찰국으로 오라고 하시더구나. 찾아갔더니 이제 식당일은 그만두고, 앞으로 경찰국에서 소사직으로 일을 하라고 하셨단다. 각종 심부름을 하는 일이었는데, 주로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일을 했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계단부터 사무실까지 청소를 끝냈어야 했지. 월급은 그 당시 돈으로3,400원을 받았는데, 쌀 한 가마 값이었단다. 그렇게 큰 돈을 받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경찰관이 받는 노임과 거의 똑같았어. 소사로 일을 시작하고 나니 돈이 꽤 많이 모였지. 돈을 모으기 시작하니,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때도 교장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셨나요?     

    아니. 그 때는 아버지가 20살이었는데, 경무계장님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 영감님이 경무계장님한테 처음 나를 소개할 때, 공부를 대단히 하고 싶어 하는 아이라고 말을 했었다는구나. 이 아이 장래를 생각해서 직장을 좀 마련해주라고 미리 얘기를 했었던 거야. 계장님이 처음 식당일을 소개해주실 때 “좌우간 네가 여기서 조금만 고생하고 있으면 너 공부할 때를 알려주마” 라고 하셨어. 하지만 나는 그 때 먹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지.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2~3년은 야간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초중등과정을 이수했단다. 이후에는 낮에 경찰국에서 일을 하고, 야간에는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어. 어렸을 때처럼 공부를 해도 내용이 기억에 잘 남지는 않았지만, 평생 배우지 못한 한을 푸는 것 같았단다. 하지만 학교를 다닌 지 3년이 채 안되었을 때,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 일을 할 때 기침이 잦았는데, 점점 피를 토할 정도로 심각해졌단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선생님이 폐가 좋지 않아서 농촌 같은 곳에 가서 밥이랑 약을 잘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하는 거야. 당시에 몇 개월만 학교를 더 다니면 졸업할 수 있었지만, 몸이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어.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울산으로 다시 내려갔단다. 울산에서 쉬는 동안  2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단다. 아무리 공부를 하려해도 ‘내 운명이 그렇게 밖에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지. 2년이 지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단다. 




*구술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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