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재계약서는 못 써드립니다!
내 주변의 전세 사기
오후 3시경,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파트 뒤편 빌라에 살고 있다는 30대 청년.
전세 만기가 되어 은행에 재계약서를 제출해야 하니 재계약서를 써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빌라 전세 재계약을 해줄 수 있냐고?
재계약을 요구할 물건이면 나도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데, 감이 안 잡힌다.
내가 계약해 준 집이 아닌가 본데....
-몇 동 몇 호이신가요?
-202동 301호요. 전세대출을 연장해야 해서 재계약서를 빨리 써서 은행에 가져가야 해요.
202동 301호?
아 그 집? 노모를 모시고 사는 50대 아들이 전세로 살다 매수했던 집인데, 3년 전쯤 팔아달라고 해서 겨우 손님을 붙였더니 돌연 안 판다고 매물을 거두었던 기억이 있다.
안 판다더니 전세로 놓았나 보구나... 그런데 왜 말이 없으셨지? 이 동네 처음 이사 올 때부터 항상 상의하던 분인데 집을 빨리 안 팔아드려서 서운하셨었나...
-아 그분들이 전세 놓고 이사 가셨군요. 잘 아는 분들이에요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 댁이라면 재계약서를 써드릴까..
-아니에요. 살던 분들이 팔면서 제가 전세 들어간 거예요. 새로 사신 분이 전세를 놓았어요.
팔고 전세?
뭔가 많은 생각들이 몰려오려고 했다.
-아.... 그럼 그때 전세 계약해 준 중개사무소에다 재계약을 해달라고 하세요. 저희는 직접 중개하지 않은 물건에 대한 대서계약은 안 합니다. 죄송해요~
-그 중개사무소가 없어졌어요. 중개보수 드릴게요. 부탁드려요. 전세 대출 연장을 해야 해요.
중개사무소가 없어졌다고? 최근 2년 내 이 근처에서 폐업한 중개사가 없는데....
-실례지만, 전세보증금이 얼마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1억 8000만 원이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청년이 말한 빌라는 2000년식 투룸 빌라이다. 매매가가 12000~13000만 원선. 그런데 전세가가 18000만 원이라니!
-죄송합니다만 제가 이곳에서 20년째 중개업을 하고 있는데 그 빌라 시세가 13000만 원을 넘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전세가가 18000만 원이라니요. OO빌라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러면 재계약하시면 안 됩니다. 집주인한테 이야기해서 보증금을 최소한 1억은 반환받으셔야 합니다."
청년은 침묵했다.
-전셋집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저는 재계약서 써드릴 수 없고 전화주신 분도 그 집에서 나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청년은 알겠다고 집주인과 통화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10분 후 다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본인은 조금 전 전화한 세입자가 살고 있는 빌라의 주인인데, 재계약서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공인중개사는 직접 중개하지 않은 대상물에 대한 대서계약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빌라 주인은, 전세 만기가 되어 대출 연장을 하려면 인근 중개사가 작성해 준 재계약서가 필요한데 안 써주면 어떡하라는 거냐! 돈 줄 테니까 써달라고, 다소 강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재계약서가 안 돼서 대출 연장이 안되면 세입자는 나가야 하고, 저는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데 돈이 안 돼요. 그러니까 좀 써주세요.
-만약 써드린다 해도 18000만 원으로는 안 됩니다. 매매가를 훌쩍 넘는 금액으로, 평균 전세 시세의 두 배 이상 금액으로 어떻게 재계약서를 써드립니까? 도와드리고 싶어도 안 되겠네요.
2년 전, 그는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빌라 매물을 보았고, 시세보다 아주 저렴하고 주변에 역이 들어설 계획이 있어 곧 폭등할 거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매매와 동시에 같은 금액으로 전세입자를 맞출 수 있어서 자기 자본이 없는 무갭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선뜻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저 돈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재계약서 좀 써주세요.
-이 금액에는 못 써드려요. 죄송하지만 다른 중개사무소를 알아보세요
-아니 은행에서는 인근 부동산에서 써와야 한다는데 안 써준다 하면 됩니까?
-저희는 중개하지 않은 물건에 대해 재계약서를 써드릴 의무가 없습니다. 오히려 잘 모르는 중개건에 대해 대서계약은 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있습니다.
대화가 끝났지 싶은데도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왠지 그 막막한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그래도 말이다. 어떤 사이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이트에 물건이 올라왔다고 시세 확인도 제대로 안 해보고 계약을 한 건 심각하게 무모한 일이었다. 그리고 매매가를 훌쩍 넘는 금액으로 전세계약을 하고 입주한 세입자 상황도 많이 안타깝다.
아무리 좋은 물건 같아도,
아무리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상태라 하더라도,
어플이나 사이트 등에 올라온 매물을 거래할 때는 최소한 해당 지역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중개사 2~3곳에는 시세 확인을 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실거래 사이트 등에서 실제 거래 가액을 확인하는 절차도 거쳐야 한다.
사람을 믿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인 반면,
사람을 믿으면 안 되는 세상이기도 한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