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노자 인생 Jul 31. 2023

거리에서 만난 시위대와 아티스트와 아주머니

토론토에서의 첫째 날 오후

파파이스에서 나오니 눈부신 햇살이 머리 위에 쏟아지고 잔디 밭에 누워 딩굴 거리며 피크닉을 즐기기에 적합인 날씨가 맞아주었다. 관광은 해야겠고 근데 앉아서 일광욕도 하고 싶어 하버프론트로 가서 산책을 할 요량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심을 걷다보니 토론토의 남산타워격 CN타워가 보여 멈춰서서 사진을 몇 번이고 찍었다. 나중에 다운타운을 반 나절 돌아다니고 보니 CN타워가 파리의 에펠탑처럼 도심 어느 곳에서도 잘 보여 나중엔 큰 감흥을 잃고 보이려니 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토론토의 서울역, 유니언 역이 가까워지니 작은 무리의 시위대와 모인 군중들이 보인다. 시위가 거의 끝나가 해산하는 분위기였는데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듯한 한 아시안계 여성에게 다가가 무슨 시위이냐고 물어보니 토론토 내 최극빈 계층과 노숙자들을 위한 소셜 하우징을 더 지어달라는 시위라고 한다. 전 세계 어느 대도시나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구나 싶고, 토론토나 런던같이 특히 월세가 비싼 도시에 살면 월세 빠듯이 내면서 사는 건 굳이 극빈 계층까지 안가도 월급 수준이 고만고만한 평범한 직장인들은 대다수 겪는 문제로 왠지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시위 장소는 유니언 역과 근접한 Royal York Hotel 앞에서 진행됐는데 그 이유는 호텔을 소유한 이가 토론토 내 부동산 건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서이고, 유니언 역과 가까워 보행자들이 많아 관심을 끌기 좋아서라고 한다.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보니 토론토 다운타운 곳곳이 이스트 지역 런던처럼 개발 중으로 공사 현장인 곳이 눈에 많이 띄었다. 

경찰과 시위대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 모두 언성 높이는 하나 없고 약간의 북적임과 소음을 제외하면 큰 소란없이 마무리되고 파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아직까지 토론토에 있었던 시간은 몇 시간 정도지만 도시 전체가 평화롭고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다. 덕분에 나도 긴장감이 누그러들고 함께 녹아드는 느낌. 


하버프론트가 다시 발길을 돌리고 큼직한 도로 너머로 이색적인 건물이 보이고 가벼운 옷차림의 현지인들이 눈에 띄었다. 바다에 도착하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고, 곧 하버프론트에 도착했다. 조금 걷다가 잔디밭에 널부러져 일광욕을 할 생각으로 적합한 곳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누드 사이클링의 날로 나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그룹이 눈에 띄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당당하게 도시를 달리는 그들의 모습에 왠지 내가 민망해졌다. 


조금 더 걷다가 만난 거리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화가가 보였다. 번잡한 주변 인파를 뒤로 하고 열정적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있었는데 명확한 형제가 보이지 않아 추상미술이라고 생각을 하며 물었다. 

“뭘 그리고 계세요?”

“ 000 라고 토론토 출신의 유명한 래퍼인데 아니?” 

“아니요.” 

“잠깐만 기다려봐.” 

하고 한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셨는데, 래퍼의 옆 모습이 나온 한 포스터였다. 아, 사진을 한번 보고 그림을 한번 다시 봐도 영 매칭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말했다. 

“이런 게 미술의 묘미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관점으로 보고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인사를 나누고 하버프론트의 한 페리 선착장에 서서 페리에 오르고 내리는 관광객들을 지켜본다. 대다수가 인도인으로 보이는 관광객으로 보였다. 조금 더 걸어내려오자 바다 앞 초록 잔디밭이 보이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현지인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신발을 벗고, 가방을 베게 삼아 잔디밭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한 30분이 지났을까. 일어나 바닷가를 산책하는 현지인을 바라본다. 아시아인과 백인 커플, 힌디어로 대회하는 3대 대가족,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온 것 같은 젊은 일본 학생들, 여러 언어가 들리며 토론토가 다문화 도시인 게 실감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걷기 시작하니 캐나다 스퀘어와 뮤직 가든이 나온다. 

한참을 걷다가 도로 옆 벤치가 보여 잠시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던 때 

“등이 정말 바르구나. 자세가 꼳꼳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바라보고 계셨다.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시선에 들어오는 아주머니의 자세. 배꼽부터 어깨까지 자세가 오른쪽으로 기울여져 보행 보조기를 짚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너처럼 자세가 참 꼳꼳했던 때가 있었어. 6년전에 남편과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사슴이 오토바이 앞에 뛰어드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지. 그 때 남편과 함께 멀리로 튕겨나간 이후로 허리 척추가 휘기 시작하더니 점차 이렇게 나빠졌어. 그 후로 기억력도 나빠진 것 같아.” 

“그렇군요. 그래도 남편이 누군지 기억하고 계시니 불행 중 다행이네요.” 농담을 던지자 뒤돌아 앉아 계시던 남편분이 웃으신다. 

“결혼 생활 20년 동안 한번도 오토바이를 탄 적이 없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남편과 동행한 날이었는데 사고를 당한거야.”  


운명은 정말 짖궂다. 


이렇게 본인 사고 이야기를 거리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푼 게 처음이 아니었던지 남편분은 등을 돌리고 앉아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다. 아마도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본인 탓인 것 같아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이미 몇 백번 이상을 들어 이제는 무덤덤한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그 얘기를 계속 하면서 한을 풀고 옆에서 듣고 있는 남편에게 은근히 죄책감이 들게 하는 상황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가자고 권유한 건 남편일지도 몰라도 함께 가기로 한 건 그녀의 선택. 사고가 난 것은 우연. 그 누구의 잘못도 사실 아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대체 치료 방법인 추나요법과 동종요법, 아유르베딕 마사지와 침을 시도해보셨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의료비가 커버되는지 물어보시는데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몰라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영국의 NHS와 비슷한 듯 하다. 전액 무료지만 느리고 답답한 시스템. 


영국의 NHS의 경우에는 영국인과 유럽인들에게나 무료지,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은 1년에 £600씩 의무적으로 내야한다. 이마저 올해 늦여름부터는 1년에 £1,000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내는만큼 혜택을 보면 아깝지라도 않지만, 느리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암 진단을 받고도 수술 대기자 명단에서 기다리는 환자들만 해도 넘치고, 미국이 비싼 의료비용으로 부자들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질타를 받지만, 영국도 상류층은 NHS 를 통해 건강 검진을 받으려면 몇 주에서 몇 달간 기다리는 동안 병을 키워, 몇 십배의 비용을 내고 Private 의료진을 찾는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남편분이 인사를 하고 떠나가고, 슬슬 어둑해진 하늘을 보고 시계를 보니 어느 덧 8시가 다 되어간다. 카우치 서핑 호스트 V와 만나기 전 편의점에 맞겨둔 짐을 참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둑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CN 타워가 낮과 다르게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데이터가 없어도 대기오염이 심해도 괜찮아, 여행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