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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Mar 10. 2024

고전 비극이
이민자 가족의 비극으로 오기까지

영화 <안티고네> 리뷰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오빠를 살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 소녀가 오빠 대신 감옥에 들어간다. 그 소녀의 이름은 바로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다. 어느 날, 캐나다 퀘백에 정착한 이민자 가족의 막내 안티고네는 비보를 듣게 된다. 큰 오빠는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둘째 오빠는 그 자리에서 구속 된 것. 심지어 둘째 오빠는 곧 알제리로 추방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 가족에게 추방은 곧 죽음을 이야기 하기에 안티고네는 두렵지만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다.


영화 <안티고네>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그리스 신화나 고전 희곡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가 소포클레스의 대표 희곡 ‘안티고네’와 연관이 있다는 것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목뿐만이 아니라 안티고네를 비롯해 주요 인물들의 이름과 희곡 내 설정까지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오빠들의 죽음, 왕(사회)이 규정한 것을 탈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안티고네의 모습이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다른 건 25백 년의 시간차뿐이다.


<안티고네>의 재미는 고전 비극을 21세기로 가져왔을 때의 이질감을 현실적인 이민자 가족의 비극으로 지워냈다는 점이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소녀의 뉴스를 보고 어릴 적 읽었던 희곡 ‘안티고네’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 두 개의 소재가 합일을 이룬 것이 바로 이 영화인 셈. 이민자로서 영주권을 가졌고, 오랫동안 이 곳에 살면서 이방인이라고 느껴보지 못한 이 가족은 큰 오빠의 죽음으로 캐나다 즉, 백인들이 만든 사회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으며, 아직도 법 체계 등에 차별을 받는 이민자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는 법정 장면에서 잘 드러나는데, 변호사 선임 없이 홀로 변호하겠다는 안티고네에게 국선 변호사 등 변호사 선임을 해야 그 이후 단계를 밟을 수 있다는 말로 강권한다. 이때 안티고네는 그의 자유 의지가 꺾이는 동시에 법정에 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지어진다.


영화 <안티고네>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경계선>(2019)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요 소재가 난민, 이민자 문제다. <안티고네> 또한 고전 희곡을 바탕으로 이민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민자로서 그가 가지지 못하는 기본권들이 무시되는 가운데, 사회는 ‘추방’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내치기가 바쁘다. 아무리 안티고네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가 권력에 맞서고 가족을 지키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나 힘들고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건 이 때문이다.


영화 <안티고네>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비극으로 치닫는(절대 스포일러가 아님) 영화의 특성상 답답하고 우울함이 가득하지만, 간간히 삽입되는 SNS, 유튜브 스타일의 영상 편집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안티고네의 남자친구인 하이몬이 그녀의 억울함을 변호하고자 그녀의 얼굴과 법정에서 내 뱉은 ‘내 심장이 시킨다’는 문구를 합쳐 만든 저항의 아이콘 과정 모습은 빠른 속도감과 볼거리를 제공하며 재미를 더한다. 이런 요소들이 삽입되면서 극중 이야기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 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영화 <안티고네>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영화는 픽션이지만 현 사회를 비추는 창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후반부 그녀의 선택은 처연하기도 하면서 용기 있고, 그래서 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라는 그녀의 신념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극중 등장하는 생 드니 가르노의 시 구절을 되뇌어 본다.



꽃보다 더 오래 살아본들 
불보다 재보다 더 오래 살아본들 
가슴 속에 꽃을 담고 죽는 것이 나으리니



평점: 3.5 / 5.0
한줄평: 고전 희곡으로 외치는 난민의 비극! 



<안티고네>는 쿠팡플레이,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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