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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Apr 15. 2024

스타일에 먹혀버린 그 시절 홍콩의 범죄와의 전쟁!

영화 <골드핑거> 리뷰

양조위, 유덕화, 그리고 20년 만의 재회! 영원한 두 형님의 만남만으로 기대되는 영화 <골드핑거>는 1970년대 홍콩 경제 황금기인 동시에 부정부패가 극심했던 시기를 다룬다.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듯한 지금의 홍콩을 생각한다면, 극 중 부패가 만연한 홍콩은 생경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게 바로 기회의 땅에서 펼쳐진 자본주의의 타락한 민낯이라고 말한다. 양조위, 유덕화의 거친(?) 안내로 그 시절 홍콩은 어떤 모습일까?



| 그 시절, 홍콩에서 벌어진 금융 범죄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1970년대, 가난한 건축사인 청이옌(양조위)은 세계 금융 중심지로 기틀을 잡아나가는 기회의 땅 홍콩으로 온다. 그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하려던 차에 우연히 만난 쩡 사장(임달화)을 통해 부동산 관련 사기에 가담한다. 거짓말 한마디면 거액을 벌 수 있는 것을 알게 된 청이옌은 본격적으로 사기를 쳐가며 부를 축적하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강행하며 홍콩 최고의 황금제국 ‘카르멘 그룹’을 만든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홍콩 반부패조사국 ICAC(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염정공서) 수사관 류치위안(유덕화)은 청이옌을 향해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골드핑거>는 실제 ICAC가 1980년대 홍콩 상장회사인 지알라 그룹의 반부패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ICAC가 지알라 그룹의 반부패 척결을 위해 쓴 세월은 무려 약 15년.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한 것은 물론, 수백억원의 소송비가 투여된 이 프로젝트는 홍콩은 물론, ICAC 내에서도 기록적인 성과로 알려져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사건은 각색을 통해 영화로 선보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이야기지만, 그 시절 홍콩을 아는 이들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IMF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을 홍콩 사람들이 보면 바로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극 중 유덕화가 소속된 ICAC에 대해 알고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1973년 홍콩에서는 횡령을 저지르고 영국으로 도망간 영국 출신 홍콩 경찰 간부 고드버 사건이 벌어진다. 1960년대부터 부정부패가 심했던 홍콩에서 이 사건은 결국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고, 영국 중앙정부는 홍콩 총독 산하의 독자적인 반부패 수사기구인 ICAC를 세우고, 본격적인 부패단속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을 반기지 않았던 집단은 바로 경찰이었다. ICAC는 즉각 부패한 경찰을 해고했고, 이 과정에서 두 집단은 충돌이 있었다. 1977년, 경찰관들은 ICAC 건물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고, 이게 바로 ‘경렴충돌’이다. 극 중 초반 이 사건이 그려지는데, 감독은 홍콩의 시대적 배경과 ICAC의 역할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한 양조위, 곽부성 주연의 <풍재기시>는 고드버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 보이지 않는 돈으로 쌓은 황금제국의 추락, 그리고 홍콩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영화의 시작은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홍콩에 온 청이옌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과거 기회를 잡기 위해 미국으로 간 이민자들의 모습이나 도시로 와서 성공을 꿈꾸는 타지역 청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설계사라는 직업이 있어도 취업이 힘든 와중에 운명처럼 그에게 온 기회는 사기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돈이 아닌 보이지 않는 돈. 특히 땅이 가진 미래 가치를 말로 뻥튀기시키고, 상대방의 기대 심리를 조장해 금액을 올리고, 차액으로 이익을 얻는 등 청이옌은 그 누구보다 쉽게 돈을 버는 방법과 전 세계 돈이 몰리는 가운데, 그 방법이 통용되는 홍콩의 실체를 간파한다.


이때부터 청이옌은 건물이 아닌 다른 걸 설계한다. 바로 돈. 그리고 그 돈으로 홍콩에서 가장 비싸고 영국인 손에 들어간 금손빌딩을 구매하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 주식 브로커 영입, 부호 자재들과의 뒷거래, 로비를 통한 불법 대출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그 돈으로 사업을 확장해 더 많은 돈을 거둬들이려 한다. 금손빌딩을 손에 넣었지만, 그 욕심은 더 커지고,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약점을 공격하며 이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한다.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영화는 ICAC의 대규모 수사와 추적을 통해 플래시백으로 청이옌이 세운 황금 제국의 민낯을 보여준다. 황금빛에 가려졌던 그 어두운 뒷면. 보이지 않는 돈으로 쌓은 제국이 곧 과거 홍콩이라는 것처럼, 감독은 돈이라는 욕망에 허우적거리며, 그게 삶의 기쁨이자 행복으로 생각한 한 청이옌을 통해 그 사실을 드러낸다.



| 비주얼에 먹힌 타락한 자본주의,

그럼에도 남는 건 양조위, 유덕화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돈으로 쌓은 막강한 부. <골드핑거>는 타락한 자본주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스타일에 신경을 쓴다. 제목처럼 황금색 빛 영상이 계속해서 나오며,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청이옌의 모습은 홍콩 경제의 황금기를 비주얼로 옮긴 듯하다.


기회의 땅에서 벌어진 자본주의의 타락을 다뤘다는 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결이 비슷한데, 부분마다 겹쳐 보이는 영상 구도와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닮은 꼴처럼 보이는 두 영화는 후반부로 가서 각자의 길을 걷는데, <골드핑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제 의식이 흐릿해진다. 자본주의 폐해를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ICAC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인지 그 부분이 모호하다. 이로 인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청이옌과 류치위안의 대결 구도는 그 힘을 조금씩 잃어간다. 좋은 배우들의 멋진 파열음을 지속적으로 보고 싶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김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그럼에도 영화의 매력은 두 배우에게 기인한다. 마치 두 배우가 관객의 멱살을 끌고 간다고나 할까. 바둑판으로 비유하자면 양조위는 흑, 유덕화는 백의 이미지로 보인다. 그들이 타는 차량의 색도 흑과 백으로 나뉘는데, 법을 무시한 채 자신이 가진 욕망에 충실한 양조위와 법을 기준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유덕화의 대결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중반부에 등장하는 심문 장면이 이를 잘 표현한다. 그동안 철저한 조사와 추적으로 만든 서류를 무기 삼아 청이옌을 공격하는 류치위안, 그리고 그 공격을 무디게 받고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청이옌의 모습은 그 자체로 멋진 대결을 보여준다. 여기에 극중 긴장감을 불어넣는 요소로써 사용하는 안경(또는 선글라스)의 쓰임새를 통해 각 인물이 진실과 거짓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도 지켜보는 잔재미도 있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차가운 그 느낌의 시초가 청이옌의 안경에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보면 더 흥미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골드핑거> 스틸 / 퍼스트런 제공


제목을 따라가듯 <골드핑거>는 그 시절 도시를 재현하고 자본주의의 허상을 비주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홍콩 달러 3억 5,000만 달러(한화 약 594억원)을 사용했다. 역대 홍콩 영화 최고 수준인 제작비를 쏟아 부을 정도로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풍재기시>에 이어 <골드핑거>에 이르는 홍콩의 과거. 누군가에겐 기회이자 누군가에게는 나락의 길을 걷게 한 그 시절의 홍콩엔 지금과 다른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골드핑거>가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그 에너지만큼은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 전달자가 과거의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두 장본인이라서 더 그런지 몰라도.


평점: 2.5 / 5.0
한줄평: 돈에 취해 갈길 잃은 스토리를 끌고가는 두 형님의 노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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