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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어야 살아남는 세상!

영화 <웨폰> 리뷰

by 또또비됴

“이것은 실화다!” <웨폰>은 정체 모를 아이의 내레이션으로 이 무섭고도 기이한 사건이 실화라 말한다. <바바리안>으로 매끈한 호러 연출력을 보여준 잭 크레거가 그린 이 이야기는 실화처럼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인들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 공포가 관객의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블랙코미디 요소를 집어넣어 웃픈 현실을 체감해야 하는 관객들은 온몸이 저릴 것이다. 우리나라 관객이 봤을 때도 그 체감은 비슷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새벽 2시 17분, 같은 반 17명의 아이가 실종된다. 알렉스(캐리 크리스토퍼)만 빼고 말이다. 모든 경찰이 총동원되어 아이들을 수색하지만 진전이 없고,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표적은 담임 저스틴(줄리아 가너)이 되고, 이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교감인 마커스(베네딕트 웡)에게 어려움을 말해도 휴식을 취하라는 말밖에 듣지 못하는 저스틴은 이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해 알렉스를 미행하고, 그의 집에서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한편, 아들을 잃은 학부모 아처(조시 브롤린)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고 과거 저스틴과 연인 관계였던 경찰 폴(올든 에렌레이치)은 마약중독자 제임스(오스틴 에이브럼스)를 쫓으며 사건의 중심에 가까이 다가간다.



| 상실이 곧 무기가 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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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알게 됐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상실’이라는 걸 말이다. <그것> <블랙폰> <기묘한 이야기> 등 다수의 호러 작품에서 실종을 소재로 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영화뿐만 아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비참한 일들(극 중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이 사라진 일과 겹친다.)을 보면 미국 사회에서 상실의 공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웨폰>은 이 상실이란 늪에 빠져 서로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그린다. 아이들이 사라진 기이한 현상 이후 부모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담임 저스틴에게 화살을 쏜다. 횃불만 들지 않았지 중세시대 마녀사냥과 비슷하다. 저스틴의 차에 새겨진 붉은색 글씨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만큼 부모들은 상실감에 의해 공허한 마음을 잘못된 방법 혹은 폭력으로 채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수록 더 공허해지는 걸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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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부모들에게 한정된 것은 아닌데, 경찰인 폴과 마약중독자 제임스도 마찬가지다. 폴은 술, 제임스는 마약을 못하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물론, 이들도 원래 그런 사람들은 아니다.


이처럼 극 중 인물들은 상실이 곧 남을 위협하는 무기로 변모하는 걸 보여준다. 영화에서 제목이기도 한 웨폰이 ‘총’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보다 더 넓은 범주에서의 무기를 뜻하는데, 그 근원에는 상실감이 자리한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무기화가 되는 모습은 큰 공포로 다가온다.



| 잭 크래거가 블랙코미디로 포장한 미국의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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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폰>에서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미국의 현실이 녹아 있다. 주요 인물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저스틴은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지금의 학교에 오게 됐고, 아처는 강압적인 교육 방식으로 아이를 키웠으며, 마커스는 본인이 책임을 지지 않는 원칙주의자다. 폴과 제임스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문제를 감추기 위해 급급하다. 이로 인해 정작 큰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마커스는 원칙을 운운하면서 이 문제에 살짝 발을 빼고 있고, 경찰은 왠지 모르게 무기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저스틴과 아처는 자신들의 방법으로 사건을 파헤치는데, 마을 어른들은 이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자신의 집과 공간에서 나가라고만 한다.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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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이런 모습을 통해 미국의 개인주의와 원칙주의가 얼마나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한 가게에서 저스틴이 공격받고 있음에도 도와주기는커녕 빨리 떠나라고 말하고,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실종된 아이 부모에게 블랙박스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보지만, 협조해 주지 않는다.


알렉스가 처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터. 그나마 담임으로서 어른으로서 저스틴이 아이의 안전에 관심을 보이지만, 마커스는 학생과의 개인적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질타를 가할 뿐이다. 결국 이 사건은 개인주의적 가치가 팽배해진 미국이란 사회 안에서 곪을 대로 곪은 일이 터진 격으로 비친다. 그동안 위험 신호를 보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이 현 미국 사회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도 힘주어 말한다. 그것도 블랙코미디로 웃프게 말이다.



| 선을 넘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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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사건의 중심부로 들어갈 힘은 선을 넘은 사람들에게서 기인한다. 개인주의적 가치가 올곧은 미국 사회에서 남의 공간을 침범하거나 사생활에 개입하는 건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자체로 순기능은 존재하지만, 그 견고한 선을 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연 이 개인주의가 미국 사회 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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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이 선을 넘는 이는 저스틴과 아처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알렉스의 집에 들어가는 이들은 무서운 실체를 보게 되는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홀로 남겨진 알렉스를 어떻게든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알렉스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몸으로 막아 구해내려는 모습들이 엿보인다. 이들 또한 문제 많은 어른이지만, 아이들을 살려야겠다는 일념 하에 개인주의를 타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행위 자체가 긍정적 결과물을 낳는다는 점에서 감독은 미국인들이 선을 넘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더 나아가 개인주의의 늪에 빠지지 말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를 도와주고 지켜주며 살아가는 게 현재 개개인이 무기화 되는 미국 상황을 조금이라고 낫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K-컬쳐와 함께 K-오지랖이 미국에 이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 영화적 재미가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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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 의식이 무겁게 담기긴 했지만 장르적 재미가 가볍게만 담기지는 않았다. <라쇼몽> <아가씨>처럼 한 사건을 주요 인물들의 시점으로 나눠 보여주며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동일한 시공간을 다른 시점에서 보여주기보다는 각 인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단서를 하나씩 주기 때문에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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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오컬트, 고어 장면과 가슴 졸이게 하는 무서운 장면들이 즐비하면서 호러 장르의 쾌감을 전한다. 특히 실종이라는 테마와 <샤이닝>의 오마주 등 스티븐 킹에게 경의를 표하는 요소들도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선물처럼 보인다.


물론, 여타 공포 영화보다 그 강도가 높지 않고, 마지막에 자칫 허무하게 마무리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그 아쉬움을 뒤덮는 그 찜찜함, 그리고 영화를 통해 비치는 현재 미국인들의 공포에 기인한다. 그 자체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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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점점 더 양쪽으로 분열하는 상황에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북미 관객들은 <웨폰>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태평양을 건너가 물어보고 싶다. 일단 긍정적인 건 북미에서 지난 8월 6일 개봉해 1억 1,530만 달러(약 1,500억 원)의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자! 이제 선을 넘을 차례다.



사진 출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평점: 3.5 / 5.0
한줄평: 미국 내 K-오지랖 수출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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