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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에 중독될 수밖에!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리뷰

by 또또비됴

솔직히 고백하지만 <채인소 맨> TVA 시리즈를 다 본 건 얼마 안 됐다. <기생수> 시리즈가 오버랩되는 인간과 악마의 결합체, 악마를 죽이는 공안의 존재와 노골적인 성적 코드의 남발 등 그 자체로의 매력은 다분했지만, 왠지 모르게 연속 보기는 되지 않았다. 그 기괴함과 괴랄함이 잘 맞지 않았다고나 할까. <룩백>의 후지모토 타츠키 원작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마음이 움직였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러다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이 국내는 물론, 북미 등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하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이 동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작품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TVA가 아닌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에 빠지는 걸까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이내 긍정의 끄덕임을 이끌었다. 영화의 다양한 매력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레제다. 레제를 보면 빠질 수밖에 없다. 계속 거슬리는 가운데 앞머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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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지(도야 기쿠노스케)는 전기톱 악마 포치타와의 계약으로 ‘체인소 맨’이 된 소년이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일본 공안 소속 데블 헌터가 된 그는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악마와 생사를 건 대결을 벌인다. 유년 시절 사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덴지에게 공안이라는 조직, 특히 자신을 거둬 준 마키마는 삶의 목표와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흠모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덴지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발생한다. 소나기처럼 보랏빛 머릿결의 레제(우에다 레이나)가 다가온 것.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흠뻑 빠진 덴지는 자신이 금사빠라는 걸 인정하듯 레제와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이내 레제의 본모습이 드러나고, 덴지는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친다.


<체인소 맨> 시리즈를 계속 보게 되는 몇 개의 장치가 있다. 그중 하나가 덴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성향은 체인소 맨으로 변해 악마를 처단할 때도 이어지는 데 시쳇말로 미친놈이다. 악마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미친놈이 뭔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 그 의외성은 악마를 소멸시키고, 관객의 우려도 잠식시킨다. 특히 그가 체인소맨으로 변한 후 얻는 액션의 쾌감은 ‘쓸어버린다’는 행위에 기인한다. TVA 1회를 보면 덴지는 자신을 거뒀지만 결국 자신을 착취한 어른, 그것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어른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이는 믿었던 기성세대에게 보란 듯이 배신당한 일본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톱으로 쓸어버리는 덴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통쾌함을 전한다. 결국 악마 같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요란하게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라를 불문하고 기성세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청년 세대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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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은 TVA의 장점을 오롯이 가져오면서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바로 서정성이다. 이는 레제에서 기인하는데, 덴지에게 접근하는 목적이야 불순하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관계와 서로 나누는 감정은 농도는 꽤나 짙다. 덴지는 단순히 성적 호기심으로서가 아닌 척박한 자신의 마음에 꽃을 피워준 고마운 사람으로서 레제에게 이끌린다. 물론, 그 이끌림이 오래가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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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이후 본격적인 덴지와 레제의 대결이 펼쳐지면서 이 구슬픈 로맨스는 곧 쉴 새 없이 터지는 폭탄으로 사라지는 듯하지만, 후반부 감독은 이 작품을 본 관객들에게 잊힐 수 없는 장면을 수놓으면서 영원히 레제를 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감정의 파고를 적절히 배치하면서 덴지와 레제가 만들어가는 멜로 서정성의 파급력은 태풍만큼 휘몰아친다.


참고로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덴지의 가슴 아픈 첫사랑은 곧 마키마의 테스트처럼 보인다. 악마의 힘을 가진 이후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덴지의 걱정을 아는 듯 마키마는 오롯이 영화만 보는 극장 데이트를 하면서 그 우려를 잊게 한다. 어쩌면 레제와의 에피소드는 그 연장선상에서 펼쳐지는 현실 체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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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의 매력은 레제다. 덴지를 사랑했던 마음, 악마로서 덴지의 심장을 가져와야 하는 임무 사이에서 쉴 새 없이 갈등하는 이 캐릭터는 관객으로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측은함까지 느낄 수 있다. 가장 좋았던 건 작품 기저에 깔린 인생의 허무함이 이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한다는 것. 이는 천사 악마라 불리는 ‘엔젤’과 병렬 구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 그 무게감을 더한다.


액션의 완성도도 좋다. 극장판에 맞게 크기로 등장하는 악마의 출연은 물론, 모든 걸 폭파하는 레제의 특성, 그리고 체인소 활용의 업그레이드 장면 등 볼거리는 충분하다. 물론, 폭파 장면들이 많아서 디테일한 액션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TVA 보다 그 쾌감은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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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A를 보고 극장판을 보는 걸 추천하지만, 극장판을 먼저 보고 TVA를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보면 볼수록 파는 재미가 쏠쏠한 시리즈이다 보니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원작자인 후지모토 타츠키가 심어놓은 각종 은유와 의미를 찾는 재미에 빠져 보시길. 더불어 경고하는데, 레제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계속 생각난다. 중독된 것처럼. 극장에 간다면 마음 단디 먹기 바란다. 이렇게 해도 어느 순간 무장해제가 되어 마음이 ‘펑’하고 터질 것 같지만.



덧붙이는말


1. 쿠키는 없지만 엔딩크레딧을 다 보고 나올 수밖에 없다. 엔딩 곡인 우타다 히카루가 부른 ‘(제인 도)JANE DOE’ 때문이다. 신원 미상의 여성 변사체를 일컫는 말로, 이 곡을 듣고, 가사를 보면 레제가 떠오른다. 참고로 리뷰를 쓰는 내내 ‘제인 도’를 계속 들었다.


2. 인물의 감정과 각 상황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인서트 컷이 적절히 들어가면서 영화의 맛을 살린다. 비가 오는 장면, ‘양 갈래 길’이라는 뜻의 카페 명, 거미줄, 시들어버리는 꽃 등등 N차 관람을 하게 만드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사진 자료: 소니픽쳐스


평점: 3.5 / 5.0
한줄평: 레제의 눈에선 인생의 허무함이, 덴지의 톱날엔 청춘의 순애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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