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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TT 리뷰

인생에 ‘다시’는 없지만

넷플릭스 <제이 켈리> 리뷰

by 또또비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배우. 성공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온 그에게 남은 건 관객들의 갈채일까? 아니면 하염없이 빠져드는 공허함과 외로움일까. <제이 켈리>는 전자보단 후자에 가깝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깨닫는 진짜 자신의 모습. 영화는 리허설 없이, 컷 없이 진짜 인생이란 무대에 홀로 선 한 남자의 후회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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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켈리(조지 클루니)는 누구나 인정하는 유명 배우다. 매니저 론(아담 샌들러) 등 조력자들의 도움에 힘입어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위치는 영화에서만 유지된다. 자신의 멘토였던 감독의 죽음, 자신을 원망하는 오래된 친구, 그리고 낯선 가족들. 정상이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그의 현실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막내딸과 마지막 여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그는 굳이 친구들과 함께 떠나기로 했던 유렵 여행에 몰래 동참하기 위해 론 등 동료들과 함께 유럽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물론, 시칠리아 영화제 공로상을 받기로 한 것도 있지만. 하지만 그에게 기다리는 건 즐거움과 행복 대신 그동안 피하고 외면했던 어둠과 시련뿐이다.


다시 해도 될까요?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연출을 맡은 노아 바움백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대사를 삽입하기 위해 영화를 역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 대사는 중요도를 갖는다. 인생은 영화처럼 ‘다시’라는 게 없는 라이브 무대다. 언제나 처음 경험한 것을 마주한 뒤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한다. 하지만 켈리는 이 라이브 무대에서 벗어나 카메라 앞의 삶을 중요하게 살아왔다. 실수해도 다시 가면 되는 영화 작업은 그에게 책임이란 부담감을 덜어주는 고마운 세계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해도 되겠냐는 말을 카메라 앞은 물론, 카메라 뒤에서도 내뱉는다. 특히 자신이 엄청난 책임을 져야하는 실제 삶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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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인생은 ‘다시’ 갈 수 없다. 가족보다 성공을 선택한 그에게 가족의 사랑을 원하는 건 욕심이다. 배우의 소질이 있었지만, 평범한 삶을 택한 큰딸은 영화와 현실 속 아버지의 괴리감에 어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작은딸은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자기 삶에 개입하는 켈리의 행동을 못마땅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딸이 자신의 공로상 시상식에 참석할 리 만무하다. 마치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연거푸 관계 회복을 시도하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평소 담쌓고 살았던 아버지를 초대했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길로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모두의 축하를 받아야 할 순간에 혼자가 된다. 그제야 인생은 영화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결국 그에게 갈채를 보내는 건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과 기차에서 초대받은 승객들뿐이다.


<결혼 이야기> <위 아 영> 등 꾸준히 가족 관계를 해체하며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각자의 민낮을 들추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가정보다 꿈을 좇은 배우이자 가장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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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켈리의 삶은 영화다. 자신의 기억은 온통 영화뿐이라 말하는 그는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만 기억하려 한다. 그의 기억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취하는 결과물인데, 이는 실제 삶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동안 피해 왔던 걸 한 번에 맞아버리니 맥을 못 추는 건 당연지사. 기차 식당칸에서 둘째 딸과의 대화 장면에서 유독 터널 장면이 자주 나오면서 그의 얼굴에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데, 감독은 이런 장치를 통해 그의 인생으로 깊이 들어간다. 더불어 기차 자체는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알 수 없는 켈리의 인생을 의미하며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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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또 하나의 장치로 매니저 론을 등장시킨다. 주인공은 제이 켈리지만 감독은 또 한 명의 가장의 삶을 비추는 데, 바로 매니저 론이다. 서로의 위치는 다르지만 동일한 건 한 가정의 가장이고,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론의 삶도 팍팍하기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스타가 부르면 언제 어디에 있던 간에 달려가야 하기에 가족에게 시간을 쓰기가 어렵다. 켈리 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에 극 중 시칠리아로 가는 여정 동안 가장 많은 딜레마를 겪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추락하는 켈리의 뼈 있는 말은 그동안 자신이 헌신한 모든 것을 반박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그 또한 인생이 주는 현실적 시련을 감당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에게 남은 건 서로뿐. 후반부 거울처럼 메이크업 해주고 나비넥타이를 고쳐 매는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가장들의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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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매력은 역시나 조니 클루니에게서 나온다. <인 디 에어> <디센던트> 등에서 확인한 바 있듯 잘나가거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남자에게 닥친 시련의 고통을 너무나 잘 표현한다. 특히 그 멋진 미소는 감춰진 시름을 더 확연히 드러나게 하는 장치 중 하나다. 이번 영화에서도 건치 홍보 모델 뺨치는 미소를 보여주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고통과 외로움에 사무친 모습은 자연스럽게 측은함과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다만, 기존 출연작에서 선보였던 캐릭터에 기인한 기시감을 오롯이 지우기는 힘들다.


아담 샌들러도 호연을 펼친다. <펀치 드렁큰 러브> <언컷 젬스> 등 코미디가 아닌 타 장르에서도 멋진 연기를 펼쳐왔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보다 현실적인 가장과 노년기를 앞둔 남성의 현실적 모습을 연기로 승화시켰다. 제이 켈리보다 론에게 더 감정 이입을 했던 관객들도 많았을 터. 함께 일하던 리즈(로라 던)에게 뒤늦은 고백을 할 때, 제이 켈리의 메이크업을 해줄 때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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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인 제이 켈리의 공로상 시상 전 헌정 영상이 나온다. 실제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작품들을 편집해서 선보인 이 영상도 감동적이지만, 이후에 나오는 가장 개인적인 장면이 더 감동적이다. 과연 그 장면은 현실이었을까 아님 제이 켈리의 환상이었을까? 인생에 ‘다시’는 없지만, 뒤늦게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한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그리고 멋진 컷을 함께 외쳐주고 싶다.



덧붙이는말


1. 패트릭 윌슨, 그레타 거윅, 아일라 피셔, 빌리 크루덥, 빌리 크루덥, 라일리 키오, 스테이시 키치, 알바 로르바케르 등 조연, 카메오로 출연하는 배우들을 챙겨보는 맛도 쏠쏠하다. 이 정도면 노바 바움백 사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 촬영은 라이너스 산드그렌이 맡았다. <라라랜드> <바빌론>에서 선보인 멋진 장면들만큼이나 극 초반 롱테이크로 촬영한 제이 켈리의 영화 촬영 현장은 백미. 그의 촬영 실력에 빠져 보길 바란다.


3. 기차 화장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이름과 과거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남자 배우들의 이름을 말하는 제이 켈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관객들 앞에 나설 때 그리고 용기가 필요할 때 그는 매번 거울 앞에서 서서 자신과 선배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까.


사진출처: 넷플릭스



평점: 3.5 / 5.0
한줄평: 진정 자신은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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