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
안녕하세요! 저는 아름다운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를 떠나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다음 목적지를 향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말을 한번 쯤은 들어보셨을거에요. 그만큼 과거 유럽에서는 로마제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는 의미일겁니다. 그 옛날 로마가 어떤 나라였길래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의 마지막 여행지, 로마로 떠나보겠습니다.
피렌체에서 기차를타고 남쪽으로 약 1시간 40분 정도 달리면 로마의 중앙역인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제 숙소의 위치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메인 거리중 하나인 나찌오날레(via Nazionale) 거리에 있는 로마 치고는 나쁘지않은 저렴한 호텔이었죠. 피렌체에서 워낙 고생을 해서 로마에선 그에 비하면 거의 궁전 수준이었습니다.
잠깐 간단하게 로마의 역사를 한번 알아보죠. 우리나라에 단군신화가 있듯, 로마도 비슷한 건국신화가 있는데 바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신화 입니다.
기원전 750년 경, 쌍둥이 형제가 담긴 바구니가 테베레 강을 따라 떠내려옵니다. 이 버려진 쌍둥이는 한 어미 늑대에 의해 키워지게 되죠. 늑대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형제는 용맹한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둘은 경쟁세력을 물리치고, 나중에는 형제간의 다툼 끝에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제거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로마(Roma)라는 국가를 건국하게 되죠.
여기까지는 신비로움과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 여느 국가의 건국 신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진짜 위대함은 기원전 5세기, 왕이 없는 국가, 즉 공화정(共和政)으로 정치 체제를 시작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절대권력 없이,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에 의한 정치. 이것이 과거 로마제국(결국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로마는 현재 북아프리카 튀니지 일대에 위치해 있던 고대 페니키아 인들의 나라 카르타고(Carthage)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지중해의 절대 지배자로 떠오르게 되었는데요. 시칠리아 섬의 지배권 갈등을 계기로 B.C. 264 ~146 총 세 차례에 걸쳐서 벌어진 이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9~201)은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의 전쟁으로도 유명합니다. 한니발은 제 1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장군이었던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로마에 대한 복수를 맹세한 한니발은 에스파냐(스페인) 총사령관의 지위까지 오르게 되죠. 결국 그는 기원전 219년 로마의 동맹 지역이었던 사군툼(Saguntum)을 공격하게 되고 제 2차 포에니 전쟁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손쉽게 사군툼을 점령한 한니발은 로마 본토를 침공을 결심합니다.
당연히 전함을 이용해 바다로 쳐들어올 줄 알았던 로마의 예상을 뒤엎고, 한니발은 그 험난하다는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는 선택을 합니다. 이 당시 그것도 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코끼리 부대를 앞세운 용맹한 한니발 군대는 결국 산을 넘어 로마 본토 코앞까지 진군합니다.
한니발의 군대 앞에서 로마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지만, 로마는 전략을 수정하여 한니발과 정면으로 대치하기 보다는 전쟁을 질질 끌며 장기전으로 끌고갔습니다. 대신, 에스파냐, 그리스 등 이탈리아 밖에서 카르타고 병력을 격파하며 이탈리아에 있는 한니발의 본군을 점점 고립시켰습니다.
로마의 젊은 장군 코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Cornelius Scipio Africanus)는 마침내 카르타고 본토를 침공하게 되고, 이탈리아에 있던 한니발은 어쩔 수 없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카르타고로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백전노장 한니발,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는 북아프리카 자마(Zama)에서 정면으로 맞닥뜨렸고, 전투는 스키피오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제 2차 포에니 전쟁은 이렇게 로마의 승리로 끝나게 되죠. 아프리카에서 한니발을 무찌른 장군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누스(Africanus)' 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이후 벌어진 제 3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하게 되고 지중해를 넘어 유럽을 지배할 준비를 완전히 갖추게 됩니다. 이어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등 재밌는 로마 역사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재미있는 로마 역사 이야기도 들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관광을 해야죠! 저는 호텔 프런트에 있는 로마 관광지도 하나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제가 종종 하는 말이지만, 데이터 사용이 제한적인 해외에서 때로는 스마트폰의 지도보다 이런 관광 지도가 더 편할 때도 있습니다! 딱 우리가 봐야 할 랜드마크들을 보기 쉽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죠! 본인이 있는 숙소 위치만 길 이름만 정확하게 파악하면 나머지는 우리 발걸음의 몫입니다!
나찌오날레 거리를 따라 쭉 내려오면 큰 회전교차로 뒤에 있는 백색의 거대한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통일 이탈리아 조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를 기념하는 기념관 입니다. 기념관 앞에는 계단이 있는 큰 단상형태로 되어있는데 조국의 제단(Altare della Patria)이며 그 앞에 펼쳐지는 광장을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라고 하죠!
나폴리에서 급구한 보급폰으로 찍어서 그런지 역시 밤에는 사진이 너무 구리게 나오네요! ^_^;; 하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아름답고 그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지게 됩니다!
베네치아 광장 뒷편, 콜로세움 쪽으로 쭉 걸어가면 멋있는 폐허 같은 곳이 보입니다. 여기는 카이사르 포룸(Foro di Cesare) 이죠. B.C 46년 경 카이사르가 세운 포룸으로 인근에 있는 황제들의 포룸 중 가장 오래된 포룸입니다. 2000년도 더 지났지만 당시의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기념으로 저녁은 이탈리아 정통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코스요리로 먹었습니다. 전채요리는 사진처럼 나왔고, 메인으로는 양고기 찜이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디저트 술을 대접해주더라구요. 이탈리아 사람들 붙임성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얘기를 하다보니 밀라노에서 건축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 아저씨는 로마에서 방금 건설 계약을 끝냈다고 그러더라구요. 기분이 좋은 아저씨는 가격이 꽤 되는 술을 계속 사줬고 저는 저대로 얻어먹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로 각자의 여행의 축복을 빌어주며 밀라노의 건축가와 작별인사를 하고 저는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짐 정리를 마무리 하고 소화도 시킬겸 잠깐 밤 산책을 하러 다시 거리로 나갔습니다.
마치 앤 공주와 조 브래들리 처럼 저도 로마 거리를 걸으며 로마의 밤이 선사하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만의 로마의 휴일의 첫 날밤은 이렇게 깊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