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너무 편파적이야" 상수는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정색하는 아내를 보자 상수도 역시 왠지 모를 반발심이 솟구쳤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 상수는 언짢은 표정으로 혼자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왜 편파적이란 거지?
무더위가 시작된 그날 밤, 상수와 아내는 광화문광장에 무허가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우리공화당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상수는 공화당을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서울시 조례를 어긴 채 막무가내로 천막을 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문재인 현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게 온당한 처사냐는 게 상수의 생각이었다. 아내는 그런 상수에게 평소와 달리 냉정하지 못하다며 쓴소리를 했다. 평소에는 수학자답게 정파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더니 왜 유독 이 문제에 관해선 공화당을 무작정 비난하냐는 것이었다.
상수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혹시 내 마음 속에 있던 일말의 비논리성과 불안감을 들켰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아내의 말에 과민반응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상수는 솟구쳤던 분노가 점차 잦아드는 걸 느꼈다.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유아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게 부끄러웠다. 상수는 곁에서 잠든 아내의 이마를 잠시 어루만진 뒤 잠을 청했다.
잠을 설친 다음날 아침, 상수는 휴일임에도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광화문광장으로 직접 가보기 위해서였다. 상수는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흔들었던 공간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광장을 향해 걸어갔다. '빰 빠밤 빰빰~' 공화당 주제가가 크게 울려 퍼졌다.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천막 안에 앉아있거나 천막 주위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이어진 당 회의와 팟캐스트 방송 등에서는 현 정부를 비판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미화하는가 하면 진보성향 국민과 정치인을 '빨갱이'로 규정하는 강도 높은 발언이 끊이지 않았다. 불쾌감과 반발심이 일기 시작했지만 상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수학자의 눈으로 현장을 바라봤다. 생각은 광화문광장을 넘어 우리나라의 정치권으로 향했다.
상수의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지금 귀류법을 활용하고 있다. 귀류법의 사전적 의미는 '그 명제의 결론을 부정함으로써 가정 또는 공리 등이 모순됨을 보여 간접적으로 그 결론이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정반대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자기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보수진영이 구사하는 모든 정치적 발언과 행위는 이 귀류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정책과 인사 등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절하함으로써 직전 박근혜정부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그것 봐라. 정권교체 해봤자 별 다를 것 없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하고 새누리당을 밀어내봤자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도 별 수 없다'는 게 보수진영의 속마음이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수위 높은 강성 발언을 하는 것은 단순히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터를 닦기 위함만은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실패가 탄핵으로 몰락한 직전 박근혜정부의 명예를 회복하고 나아가 보수진영 전체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박근혜정부를 '참'으로, 문재인정부를 '거짓'으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수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기업 관련 범죄·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와 국정원 특활비, 공천개입 등 혐의로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오판과 경제적 무능은 현 문재인정부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정부가 참이었음을 증명하겠다니. 상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참 동안 주물렀다.
상수는 보수진영이 구사하고 있는 다른 정치공세를 분석하면서 연립방정식을 푸는 소거법을 떠올렸다. 소거법은 미지수가 여러개인 연립방정식을 푸는 기법이다. 특정 미지수를 포함한 항의 계수가 0이 되도록 방정식끼리 더하거나 빼는 방법이다. 상수는 이 방법이 정치권에서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고 봤다. 비슷한 사안을 만들어서 대중이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수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당이 소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까지 한국당이 국회 일정을 거부한 채 벌였던 장외투쟁은 현재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 시절에 자주 썼던 전술이다.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을 계기로 청와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을 압박하기 위해 서울시청 광장에 천막을 치고 대여투쟁을 벌였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진보성향 국민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일부 거뒀다. 한국당 역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진영을 결집하기 위해 장외투쟁을 벌이고 문재인정부에 대한 공세를 최대한 강화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박근혜정부 내내 민주당의 인사청문회 공세에 시달렸던 한국당은 이번 정부 들어 똑같은 방식으로 반격하고 있다. 능력 검증보다 자극적인 도덕성 검증에 집중하는 방식은 민주당이 즐겨 썼던 방법이다. 요컨대 한국당은 과거 민주당이 야당시절 썼던 정치투쟁 방식을 하나하나 따라하면서 서로 피장파장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국당이 원하는 그림은 국민들이 보기에 박근혜 탄핵과 이에 따른 정권교체의 의미와 효과가 아예 부인되는 것이다.
공화당이 벌이고 있는 광화문 무허가천막투쟁 역시 박근혜정부 당시 있었던 세월호 천막투쟁을 본뜬 것이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던 세월호 천막이 세월호 사고로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겠다는 취지였다면 공화당이 제시하는 설치 이유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내려지던 2017년 3월10일 탄핵 반대 시위자 중 5명이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는 의심스런 주장이다. 이를 통해 공화당은 세월호는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는 논리를 편다. 서울시는 '조례상 광화문광장은 문화행사만 허가하는 허가제 광장이므로 정당인 공화당의 천막은 안 된다', 또 '세월호 천막은 비정치적인 것이고 중앙정부가 허가했다' 등 이유를 덜어 천막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공화당은 조례보다 훨씬 더 큰 위상을 갖는 헌법을 앞세운다. 공화당은 2017년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진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를 예로 들며 헌법상 권리인 저항권과 집회 시위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시는 공화당 천막을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철거하려 하지만 자칫 이는 보수진영이 소거법을 적용할 계기가 될 수 있다. 강제철거는 원래 보수진영의 전유물이었다. 진보진영이 비난해 마지않은 용산참사는 바로 공권력에 의한 강제철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사망과 부상, 이를 극복하려는 투쟁은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을 통틀어 진보진영의 상징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울시는 공화당 천막을 강제철거함으로써 진보진영이 독점해온 전가의 보도를 스스로 훼손함은 물론 자칫 이 무기를 보수진영에게 온전히 넘겨줄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시가 공화당 천막을 강제철거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사망자가 발생한다면 이는 진보정권에 의한 강제철거로 국민이 피해를 입는 역사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진보진영의 도덕성과 인권감수성을 소거시키는 치명적인 전례가 될 수 있다.
상수는 말없이 광화문광장을 걷는다. 공화당 천막에서 마이크를 쥔 인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찬양,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고하다는 항변 등이 여과 없이 흘러나온다. 극우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곰곰이 연설을 듣던 상수는 문득 박근혜정부 시절 통합진보당을 떠올린다. 공화당이 극우라면 통합진보당은 우리 사회의 극좌라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당신 떨어뜨리려고 출마했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의 파장이었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박근혜 후보는 당선되고 야권 문재인, 이정희 후보는 낙선했다. 결과야 어쨌든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의 당시 전략은 아마도 프랑스 수학자 보르다(Jean-Charles de Borda)에게서 비롯됐을 것이다. 보르다는 두 개 이상의 선택지가 있을 때 한 명의 유권자가 모든 선택지에 순차적으로 점수를 주도록 투표했을 때 해당 집단과 개인들의 의사가 가장 정확하게 반영된다고 주장했었다. 보르다의 주장은 1인1표제인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지만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보르다는 다수 후보가 있는 상황에서 1위 후보를 저격할 수 있는 군소후보의 영향력에 주목했다. 1위 후보의 천적인 군소후보가 점수를 많이 뺏어갈 경우 합산 결과 1위 후보가 2위로 떨어지고 2위였던 후보가 1위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고 보르다는 설명했다. 아마도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후보는 자신들을 박근혜 후보의 천적으로 자부하면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외곽에서 도울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은 뜻을 이루지 못했고 박근혜정부 하에서 정당해산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맞아야 했다. 오늘날 공화당 역시 통합진보당과 같은 역할을 자임하는 모양새다. 공화당은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는 물론 민주당 대선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싸움을 걸면서 극우 성향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이를 통해 한국당의 짐을 덜어주고 있다. 한국당은 공화당과 차별화를 꾀함으로써 중도층 유권자들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고 있다. 한국당과 공화당은 사실상의 공생관계다. 하지만 이 시도가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2012년 대선에서 보르다의 지혜를 빌린 진보진영이 패했듯이 현재 보수진영 역시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의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한다.
'빰 빠밤 빰빰~' 생각에 잠겨있던 상수는 갑자기 울려 퍼지는 공화당 노래에 화들짝 놀랐다. 상수는 문득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라는 오랜 격언을 떠올린다.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지식인 볼테르가 했다는(허구라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라는 말도 뇌리를 스친다. 그 순간 공화당 관계자가 다가와 우두커니 서있는 상수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니 행사 구역 안에 앉거나 바깥으로 비켜주시겠습니까?" 공화당 천막 근처에서 누군가가 통행로를 막을 경우 이를 근거로 통행 불편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면 서울시나 경찰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스스로 통행로를 확보하고 민원 요인을 차단할 만큼 공화당은 광화문천막을 지켜야할 요충지로 여기고 있다. 이 모습에서 상수는 2017년 촛불집회 당시 박근혜정부에 공권력 투입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질서를 지켰던 집회 참가자들을 떠올린다.
광장을 떠나며 상수는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수학공식은 없을까 생각한다. 그런 공식이 있다면 우리는 광화문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텐데. 625전쟁 후 생긴 북한에 대한 공포심, 학창시절 끊임없이 들었던 반공교육, 북한의 거듭된 군사도발, 군사독재를 미화했던 언론 등이 생애를 통틀어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댔을 것이다. 저들은 어쩌면 감수성이 예민하고 기억력이 좋은, 남의 말 잘 믿는 순진한 사람일 수도 있다. 현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저들과 비슷한 교육을 받고 지적 경험을 했지만 이후 여러 계기로 정반대 생각을 갖게 됐을 뿐이다.
과연 우리는 이 마음과 저 마음, 이 생각과 저 생각, 이 명제와 저 명제 사이에서 참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을까? 마음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배제하고 때리고 학살하는 게 옳은 일일까? 특정한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소수라고 해서 그들을 제거하는 게 바람직할까? 그리고 반대로, 특정한 마음과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현저히 해할 때까지도 여전히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야하는가? 특정집단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타인의 이익을 침해할 때도 용서해야 하는가? 현행 법령을 어기는 특정집단에 법령을 어길 무한정한 자유를 주는 게 바람직한가? 상수는 생각했다. 수학에 많은 미해결 문제들이 있지만 어쩌면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지는 지금 이 일들은 우리 앞에 놓인 최대의 수학문제일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