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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치 Jun 07. 2021

개를 기른다 1

 개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가? 잘 모르겠다. 했더라도 아주 예전의 일이었겠지. 엄마는 알레르기도 심했을뿐더러, 그때의 우리 가족에 동물 가족이 비집고 들어올 정신은 없었다. 뭔가를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죄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더 어렸을 때 무작정 데려왔던 병아리나 햄스터를 잘 키우지 못했던 죄책감도 분명히 어딘가에 숨어있었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사무치게 지루함과 동시에 몰아치는 폭풍 같았다. 그래서 그랬나, 나는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가자마자 저빌 두 마리를 샀다. 일주일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쪼그려 앉아 무릎을 껴안고 케이지를 빤히 들여다봤다. 눈이 빨개. 엄마의 말이었다.


 엄마가 어릴 때 토끼와 부엉이를 돌본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아니 토끼는 그렇다 치고, 부엉이를 돌보는 게 말이 되나? 큰오빠가 부엉이를 쫓아내라고 할 때까지 엄마의 지극정성은 이어졌다. 가, 가라고! 손을 휘저어 쫓으면 조금 멀리 가 앉아있고, 발을 굴러 쫓으면 조금 더 가서 엄마를 바라봤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지. 유전자 염기서열에 동물에게 우호적인 형질이라도 새겨져 있는 걸까. 엄마가 아꼈던 동물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빼도 박도 못하는 엄마 자식이구나 싶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고양이 둘과 살고 있었다. 고요하고 나른한 날들이었다.


 개가 온 지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 아홉 살 생일이 세 달 남았지만, 분리불안이 심해 때때로 짖는다. 여섯 시간 이상 집을 비우는 건 내 마음이 불편한 일이 됐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예 친구네 집에 개를 맡겼다. 집으로 혼자 오는 길에 느끼는 허함.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전 애인들과 별생각 없이 돌아다녔던 길도, 같이 걷던 개가 없으니 코 끝이 찡했다. 사람이 없으면 울다 지쳤다 돌아온 기운에 다시 짖어대던 개를 떠올리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집에는 개의 공이 백 개가 있다. 고양이의 공도 있는데, 보통은 개가 한두 번 깨물어보다 자기 공으로 끼고 자는 일이 대수였다. 잠깐 쓰레기 버리러 갈 때에도 따라 나오느라고 급하게 물고 나간 공 두어 개는 잃어버렸다. 서랍 밑이나 냉장고 뒤로 들어간 것도 있지만 구태여 찾아주진 않고 있다.


 요즘의 개는 따뜻한 이불을 덮고,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는 꿈을 꾸며, 아직까지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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