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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치 Sep 19. 2021

쓰는생활

20210317 피아노 학원

아주 오랜만에 피아노 학원에 갔다. 고양이 털이 잔뜩 묻은 악보 파일은 잘 닦아 옆구리에 끼고 20분 정도 촐랑촐랑 걸어갔다. 미세먼지가 나쁘다던데 그래도 비가 와서 그런지 좀 낫네.


그마저도 19시 연습, 20시 레슨인데 잘못 알고 퇴근하자마자 18시에 학원엘 도착해 학원에서 세 시간 동안이나 밍기적거렸다. 연습 타임이 안 맞아 연습실과 레슨실을 왔다 갔다 총총거렸다.


오랜만에 학원엘 가니 선생님께서 잠깐 못 알아보셨다. 히히. 어제는 뒷모습이 너무 세미씨인 사람을 봐서 뒤에서 세미씨, 세미씨, 하고 불러보셨다고 했다. 짧고 소담한 대화가 즐거웠다. 정다운 웃음 덕에 잠깐 뭉클했다. 악보에 1/26으로 체크되어 있는 걸 보니 거의 한 달 반 정도만에 간 것 같다! 나는야 날라리 수강생.


한 달 넘게 손을 놓고 지내던 통에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왼손이 죄 헛돌아 처음부터 다시 연습을 해야 했고, 친구가 보내준 악보를 뚱땅거리려다 휴대폰 화면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아서 눈이 급격히 당겨왔다. 이러고 레슨 받아도 되나, 좀 별론데, 잠깐 소심한 생각을 펼쳤다.


레슨은 50분 동안인데 선생님과 만나면 고양이 얘길 나누는 게 어떤 루틴처럼 되어서 잠깐 선생님네 하루와 봄이, 우리 집 살구 얘길 나눴다.


나는 피아노를 칠 때 명료하고 알맹이 있는 소리를 잘 내지 못하고 흘려버리거나 과하게 리듬을 타는 편인데, 연습을 안 한 티가 소리에서 좔좔 흘렀다. 아이구 아이구.


선생님께서는 건반을 눌러 저 깊은 강에 돌을 하나 빠트리는 소리를 내보자고 하셨다. 너울지듯 치는데 얕은 너울이 아닌 먼바다에서 보이는 모양처럼 부드럽고 넓게 연주해 보자고 하셨다.


다이내믹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극적인 강세를 표현하기엔 아직 내가 연습이 너무 덜 됐다는 게 계속 느껴져서 내내 부끄러운 한 시간이 지나고!


클래식 어때요? 좋아요? 물어보시는 말씀에 네 좋아요... 재밌어요... 그렇게 대답하자 선생님께서 손가락 연습을 좀 해보자고 하셨다. 헉. 하농 치나요? 붓점 붙여서?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하농 안 좋아한다고 하셨다. 다행이다(?)


연습하자고 주신 악보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5학년 때... 앞으로 피아노 전공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던 원장님께, 전공은 안 하고 싶어요. 저 다른 거 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한 나는 다행히도 피아노로 전공을 삼지 않은 탓에 넘쳐나는 천재들 사이에 껴서 풀 죽어 근근이 살지는 않고 이렇게 성인 취미반을 다니면서 즐거워하고 있네. 어떤 일이든 일로 삼지 않아야 즐거운 걸까? 그러기엔 피아노 학원 다니는 일 정말 재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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