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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er Choi Nov 02. 2022

아부다비, 국제기구 인턴의 추억 (1)

에너지 컨설턴트가 될 때까지 


 2020년 11월. 나는 아는 이 하나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었다. 


Abu Dhabi. 두바이가 속한 아랍에미레이트의 수도, 아부다비였다. 




    처음부터 국제기구를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제기구를 가겠다고 당차게 밝히던 학생을 영어 선생님은 기특하게 봐주셨다. 하지만 나도, 선생님도 그것이 10년도 더 지나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외교관후보자 시험(이전 외무고시)을 오랫동안 준비했었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멋있어보였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마침 학교는 외교관후보자를 많이 합격시키는 학교 중 하나였고. 그 뿐이었다. 


 그런데 시작 전에 스스로와 하나 약속을 한 것이 있었다. 딱 3번만 해보고, 안되면 말자는 것이었다. 


 2017년, 1차 합격 2차 불합격 

 2018년, 1차 합격 2차 불합격

 2019년, 1차 합격 2차 불합격


 그렇게 나는 2019년 여름 취준을 시작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느낀 날이었다. 


    2019년 여름. 경기가 안 좋다, 안 좋다 할 때였다. 매년 경기는 왜 그리 안 좋아지는 것인지, 유례없는 불황이라는 말 속에서 나는 50개의 서류를 썼고, 그 중 대여섯 개 서류를 붙고, 그 중 두어개의 면접을 보고, 면접은 모두 떨어졌다. 


 오전에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하루에 네 다섯개가 떨어질 때는 큐비클 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PPT를 수정했다. 눈물은 생리적으로 나는 것 같았다. 그 때는 '슬프다'라는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저 누가 세게 꼬집으면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렇게 별 감정도 없이 울었다. 세상이 나는 온통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 


 그러다 2020년 초, 어떤 기업도 잘 공고를 올리지 않을 때, 국제기구 인턴 구인 글이 올라왔다. 게다가 잘 선발하지 않는 인사팀(HR Position) 이었다. 고시를 하기 전에는 인사팀 아르바이트 경험 등이 있었기에, 나는 곧바로 신청했고, 정말이지 모든 것이 안되던 것이 이상하리만큼 수월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엄청 큰 캐리어를 처음으로 쇼핑하던 때에, 메일이 날아왔다. 


[ 아부다비의 모든 비자가 취소되었습니다. 시작 일자는 다시 한 번 논의해봅시다. ]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저 멍하니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선 어느 공고든 다시 닥치는대로 지원해보았다. 그 중 하나가 쿠팡 인사팀의 단기 파견 계약직이었다. 단기, 파견, 계약. 어느 것 하나도 시작하기에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우선은 무엇이든 살아남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면접에서 사람 좋은 얼굴을 하신 면접관님은 그저, '열심히 하라'고 하고는 선발했다. 이게 면접이 맞나 싶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나이가 오히려 많았기에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셨으니 천운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8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그 때 함께하던 비슷한 처지의 다른 친구들은 무사히 안착해서 쿠팡의 정사원으로서 재직 중이거나 아니면 다른 회사의 인사팀으로 재직 중이다. 가끔 사람은 살면서 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아주 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결국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의 몫일 것이다. 


 그렇게 나도 무사히 적응하던 어느 날, 또다시 뜬금없는 메일이 날아왔다. 


 [ 비자가 갱신되었으니, 입국 일자를 정해봅시다. ] 


 당시 아부다비의 취소되었던 비자가 모두 갱신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국제기구 비자는 특별하게 먼저 열리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이미 파견 계약에서 직속 계약직으로 바뀌었고, 몇 달만 더 다니면 정식으로 바뀔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주변 모든 가족, 친구에게 물어봐도 의견은 갈렸고 너무 답답해 퇴근길에 잠시 한강에 내려서 바람을 맞으면서 생각에 잠기던 일이 잦았다. 


 쿠팡은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고 그것은 내부에서, 특히 인사팀으로서 무엇보다 명확하게 느껴졌으며, 아부다비는 인턴에다가 갔다오면 다시 그 지옥같은 취준을 지속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래도, 당장 1년 후에 무엇을 더 후회할까 생각해보니 국제기구 인턴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운명에 이끌리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답 메일을 보냈다. 


[ 11월 초에 입국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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